게시판 관리
PRESS RELEASE
내용 보기
제목 [PD수첩] 심층취재 - '멀고 먼 의료소송, 두 번 우는 환자들'
내용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1988년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건의한 지 22년 만이다. 의료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독립 법안이 탄생되는 순간이었지만 여전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핵심쟁점이었던 과실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내용은 제외됐고 중대 과실이 아니면 의사에게 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를 비롯한 시민 단체는 “의사 특혜법안”이라며 제도의 실효성과 목적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 PD수첩>에서는 본회의의 의결만을 남기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논란’을 취재했다.

▶ 의료소송 7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의료분쟁에 관한 소비자원 상담건수는 지난 2007년 1만 4천 127건에서 2008년 1만 4천716건으로 증가했고 의료소송건수도 매년 1천 건을 웃돌고 있다.
올해 26세, 서 모 씨. 그녀의 삶은 지난 2003년 이후 180도 달라졌다. 목과 어깨 통증을 치료를 받는 가운데 ‘사지불완전마비’를 얻게 된 것이다. 서 씨와 가족은 병원 측의 과실을 주장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나 의사와 병원은 과실을 인정할 수 없으니 법대로 하라며 으름장을 놨다. 의료사고는 환자의 몸과 마음에 이중의 고통을 안긴다. 서 씨의 부모는 생업을 팽개치고 지난 7년간 소송에 매달렸지만, 아직도 소송은 계속 되고 있다.
지난해 2월 초 인터넷에 ‘한 지방병원의 산모사망사건’이라는 글을 올린 황 모 씨. 황 씨는 아내가 병원의 부주의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제왕절개 수술 이후 자궁 내 대량 출혈(태반조기박리)이 발생했는데도 의료진이 수술 이후 12시간 이상 산모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살고, 20대의 젊은 아내는 사망했다. 황 씨는 45일간의 수술과 치료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기록했고, 그 눈물의 기록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의료과실이 아님을 주장하며, 남편 황 씨가 사건을 왜곡하고 있으니 법원에 인터넷 글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년, 아직도 황씨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다. “억울하니까 무조건 밝혀야죠. 아이와 함께 웃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항상 울고 있어요.”

▶ 의료사고 피해자, 험난한 입증의 길
지난 2000년 D병원 흉부외과에서 하지정맥류 제거 수술을 받은 김 모 씨. 수술 이후, 다리에 급격한 통증을 느낀 김 모 씨는 결국 부분마비로 보행 장애를 얻게 되어 지난 2006년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위해 진료기록을 확보한 김 씨는 병원의 과실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D병원이 김 씨가 수술을 받기 전 상태를 적은 진료기록에 ‘보행 어려움’이라고 가필해 변조한 뒤 증거로 제출했던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진료기록 내용을 변조하는 행위는 심각한 입증 방해행위이고, 병원 쪽에 어떠한 의료상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로 삼기에 족할 정도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의료소송은 다른 소송에 비해 전문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김 씨와 같이 의료진의 과실이 입증되어 승소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 2008년만 해도 1심에서 처리된 의료소송 894건 중 원고가 전부 승소한 경우는 고작 8건에 불과하다.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의사의 과실과 환자 상태의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을뿐더러 손배액을 결정하기 위한 객관적인 환자의 신체감정이 어려워 소송이 2~3년씩 길어지는 경우도 흔히 있다”고 말한다.
의료분쟁조정법이 지난 20여 년간 제정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논란만 되풀이된 것은 바로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 때문이다. 몇몇 의원과 시민단체들은 의료사고 발생에 대한 과실 여부를 의사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에서는 무분별한 의료소송 남발을 우려하며 의사 입증책임을 반대해왔다.

▶ 의료분쟁조정법, 누구를 위한 법인가? 
국회에 계류 중인 ‘의료분쟁조정법안’은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을 의사나 환자 어느 한쪽에 두지 않고 신설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산하의 의료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을 통해 과실 여부를 결정토록 했다. 위원회는 법조인과 교수, 의료계와 시민단체 추천인사 등 5인의 전문가를 조정위원으로 구성, 병원 측 과실이 인정될 경우 배상금 액수까지 제안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독립적이고 공정한 의료분쟁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료소비자에게 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재원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우려 또한 크다. 의료사고가 대부분 명확한 사실규명이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 중재원도 의사들에게 면죄부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분쟁조정법’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의료사고 감정단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의료심사가 이뤄져야 하며, 무분별한 무과실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 : 김환균
연출 : 강지웅
글/구성 : 이소영
취재 : 이세라
홍보 : 남궁성우
예약일시 2010-03-08 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