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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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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PD수첩」 <민주화 시비, 동의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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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은 동의대 5·3사태

왜곡된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는 1989년 부산 동의대 5.3사태 가담자 46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했다.

그리고 지난 5월 3일, 부산 동의대와 대전 국립묘지 경찰묘역에선 동의대 5.3사태 13주기를 기리는 기념식과 추모제가 따로 열렸다. 13년이 흐른 오늘에도 이들 양자를 두고 가해자와 피해자, 살인자와 희생자 그리고 이제는 민주열사와 반민주 반역자라는 극단의 이분법이 횡행하고 있다.

* 학생들이 희대의 살인마가 된 89년 5월 3일

89년 5월 3일 학생들에게 인질로 잡힌 전경들을 구하기 위해 도서관 건물 7층에 진입한 전경들은 학생 윤00가 던진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로 경찰관 7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재판 결과 '유류에 의한 유증기의 급속 발염' 즉 학생들이 전경들을 기다리며 바닥에 신나와 석유를 뿌려놓고 그들이 7층에 다다르자 화염병을 던져 대형 참사를 야기 시켰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민주화인가? 우리는 반역자인가?

13년이 지난 지금도 처참히 떠나 보낸 가족을 잊지 못하고 통한의 삶의 살아가는 유족들은 이번 보상심의원회의 결정에 헌법소원을 해서라도 재심의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바리케이트가 많이 쳐진 상태라 전경들이 진입이 어려웠고 그만큼 시간이 많이 지연되어 학생들이 충분히 도망갈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석유와 신나를 바닥에 뿌리고 전경들을 사지에 내 몬 학생들을 절대 민주화 열사로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해자인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면 그들을 저지했던 경찰들은 민족의 대반역자란 말이냐며 그들의 분통 어린 함성이 드높다.

*풀리지 않은 그 날의 의혹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은 오늘날까지 학생들은 그 날의 사건에 대한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면 정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을 희대의 살인마로 낙인시킨 화재원인에 대해서는 학생 누구도 신나와 석유를 사고현장에 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윤00가 화염병을 던지고 난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발생한 화재라 화염병을 시발점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고 윤00 또한 아무것도 없는 맨 바닥에 화염병을 던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물에 진입한 경찰들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수색 활동으로 인해 석유등의 유류가 바닥에 흘러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오직 전경들만 있었던 7분 동안 그 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13년간 잊혀졌던 동의대 사건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민주화의 의미와 왜곡되었던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예약일시 2007-03-07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