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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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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PD 수첩」LA 폭동 10주년- 그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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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드니 킹 사건과 LA 폭동

1991년 3월 3일 난폭운전을 하던 흑인 로드니킹이 경찰에 잡히면서 백인 경찰관 4명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약 1년 후 4월 29일 백인 경찰관에 대해 모두 무죄평결이 나면서 흑인들은 집단 거주지인 LA 사우스센트럴을 중심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3일 동안 발생한 이 폭동에서 58명이 사망했고, 2383명이 부상, 2300여 업소가 피해를 입었다. LA 전체 재산 피해액만도 5억5천달러가 넘었는데 이중 한인 업소는 약 1600여개가 전소되거나 파괴됐으며 그들의 재산피해가 3억달러에 달했다.

당시 언론이 만들어 낸 두순자 사건과 흑인 폭동의 연결 고리

백인 경찰과 흑인 로드니킹과의 사건이 흑백갈등으로 나타난 LA 폭동. 그런데 왜 피해의 절반을 하필 한인들이 안아야 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로드니킹 구타 사건이 발생한 약 2주 후, 두순자 사건에서 시작된다.

91년 3월 16일 한인 두순자씨가 운영하던 가게에 15살의 흑인소녀가 오렌지 쥬스를 훔쳐 달아나다 두씨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언론은 그 사건의 장면을 보도했다. 사실 그 소녀와 다투면서 두씨가 흑인 소녀에게 정신이 나갈 정도로 두들겨 맞아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 그해 12월 두씨의 정당방위가 인정돼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이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보이지 않는 손... 아무도 한인을 도와주지 않았다

조금씩 잊혀져가던 두순자 사건은 LA 폭동이 일어나던 날부터 다시 등장하게 된다.
92년 4월 29일, 로드니킹을 구타했던 경찰관이 모두 무죄로 풀려나면서 폭동이 시작됐고, 현지 언론은 앞다투어 두순자 사건을 보도해 흑백갈등을 한흑갈등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렀다. 심지어는 국내 언론조차도 두순자 사건에서부터 한흑갈등의 골이 깊어져 한인상가가 상당수 피해를 봤다고 보도, 흑백갈등이 아닌 한흑갈등으로 비하시켰다.

이에 대해 당시 한인들은 처음부터 줄곧 언론과 경찰, 정치인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다.
당시 언론이 두순자 사건으로 흑백갈등을 덮으려고 했다면 경찰과 정치인이 로드니킹 평결결과 폭동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경찰을 2선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고 LA 경찰은 그날 1천명의 경찰관을 비번으로 귀가시키는 등 공권력의 방관이 더 큰 피해를 입게 했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경찰이 비버리 힐즈 등 백인 부촌에 대거 투입됐다는 것. 결국 경찰은 백인을 보호하기 위해 한인타운을 폭도들의 화풀이 감으로 던져 준 셈으로 이 사실은 한인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미국사회에서 중간 소수민족이란 위치

LA 폭동을 계기로 학계에서는 미국사회에서 흑인계층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즉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위치-실업률은 높고, 저교육층이 다수인 점-를 흑인폭동의 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흑백갈등에 있어서 한인들에게 '불똥'이 튄 이유에 대해서는 한인이 갖는 중간소수민족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고 이 관점으로 흑인폭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사회에서 한인이 갖고 있는 위치는 주류사회인 백인 사회와 피지배계급인 흑인과 라틴계 사이에 중간 소수민족의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 중간 소수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흑백갈등이 생길 때마다 미국 주류사회인 백인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전혀 접하지 않아도 되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간 소수민족인 한인들에게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번지는 위기.. 제2의 인종폭동은 일어날 것인가

LA폭동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끝난 것만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LA폭동을 한흑갈등의 문제로 생각하는 변함없는 백인 주류사회의 시각도 문제지만,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서 오는 한-히스패닉과의 갈등이다.

히스패닉은 대부분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인종차별과 임금착취에 폭력까지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LA의 한 '노동상담소'에 따르면 한인업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히스패닉의 신고가 올해만 해도 100건이 넘었다고 한다.

한인이 운영하는 대형마켓 '○○마트'의 경우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히스패닉 점원을 해고, 소수민족간의 갈등의 씨를 뿌렸다. ○○마트의 히스패닉 노동자들 중 일부는 "최저수준의 임금, 형편없는 베니핏, 인간적 모멸감, 부당한 해고를 견딜 수 없다"며 노동상담소를 통해 고소절차를 밟고 있다.
5년 내에 인종 폭동이 재발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을 정도로 히스패닉의 한인에 대한 증오는 수위를 넘어섰다.

4·29세대와 한인사회의 미래

이런 위기 속에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바로 4·29 세대(Children of Sa-i-gu)라는 신조어로 불리는 교포 2세대로 4·29의 진실을 밝히는 역사적 작업을 짊어진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4·29를 잊지 말아야 한다며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10주년 행사 또한 4·29세대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추진됐다. 행사의 주제는 '10년 후, 우리가 기억하는 4·29 (A Decade Later, We Remember Sa-i-gu)'.

4·29 세대들은 앞으로 인종 폭동을 막기 위해선 다른 커뮤니티들과의 연계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폭동의 직접적인 피해자 가족은 아니었지만 UC 버클리대를 졸업한 임준 양은 4.29를 계기로 한인커뮤니티와 일하고 싶다며 현재 청소년 카운셀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Kevi Murray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제니 김, 연방하원 의원 Lucille Roybal-Allard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미라 장은 한인들의 정치권익신장에 관심을 가져 전선으로 직접 뛰고 있는 4·29세대들이다. 이런 활동은 당시 미국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으로 자신들을 제대로 변호할 수 없었던 1세들의 한을 풀고, 다른 인종과의 화합을 이끌어 내는 작업으로 미 주류사회에서 한인사회의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예약일시 2007-03-07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