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서는 지난 달 국립 암센터의 병원장으로 취임한 세계적인 폐암전문의 이진수 박사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본다. 국내에서는 지난 해 암투병중인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 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을 치료한 의사로 알려진 그는 이미 미국 의학교과서에 논문이 실렸을 정도로 세계적인 폐암권위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에서의 명성을 뒤로 한 채, '절반으로 줄어든 연봉' , '가족과의 헤어짐'을 감내하며 고국행을 선택해 더 화제를 모았던 인물 이진수 박사. 그러나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는데….
유복자로 태어나 의지하고 살던 어머니와 할머니 두 분을 모두 암으로 떠나보내며 '암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암울했던 시절 '학생운동'의 전력때문에 국내에서는 수련의로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만삭의 아내와 쫓기듯 떠난 미국에서 세계적인 폐암전문의가 되어 돌아오기까지 그의 역정.
제186회 성공시대에서는 오늘의 위치에 서기까지의 그의 남다른 노력과 '환자를 섬긴다'라고 표현하는 그의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이 시대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조명해본다. 또한 그가 20년 가까이 피워온 담배를 끊게 된 사연, 이진수가 말하는 암 예방법 및 암환자, 보호자들의 생활 수칙 등을 소개한다.
1. 따뜻한 손, 차가운 손
국립 암센터에서의 첫 진료가 있던 날, 이진수 박사의 진료실을 찾았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일어서서 맞아주는 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국내 여느 병원과는 다른 긴 진료시간이었다. 자상하다·따뜻하다·친절하다… 환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환자들 중에는 그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미국까지 갔다가 다시 귀국한 환자가 있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이미 대단했지만, 이러한 명성에서 느껴질 법한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렇듯 그가 유난히 환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데는 그만의 가슴아픈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6.25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할머니·어머니와 살던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을 모두 암으로 떠나보내며 '암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다. 인턴시절 어머니의 위암 수술실에는 직접 들어가기도 했지만,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어머니는 '나 안 죽는다'란 말씀을 남기며 싸늘하게 식어갔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머니의 따뜻한 손은 아주 차갑게 변해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생명이란 것이 얼마나 존엄한 것인지를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또한 무작정 떠난 미국에서 아들은 악성빈혈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고, 그 자신 역시 '말단비대증'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수술실로 들어가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직접 체험했던 적이 있었다.
끝이 막힌 동굴이 아닌, 언젠가는 햇빛을 볼 수 있는 터널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의사 이진수.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깨달은 '따뜻한 손'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오늘도 그 따뜻한 손이 전하는 생명의 느낌 속에서 비로소 행복한 의사가 된다.
2. 중의(中醫)의 꿈
암치료 분야에서는 미국 최고로 꼽히는 MD앤더슨 병원에서 폐암권위자로, 의과대학 교수로, 수백만달러의 연봉과 함께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던 그가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가족과의 이별 또한 감내하며 그가 국내의 신생 암센터로 자리를 옮긴 이유. 그것은 그가 대학시절부터 그려온 의사로서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공부 잘하던 의대생이었던 진수는 판자촌 의료실태 조사를 나가서 지금까지 그가 보았던 것과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단지 돈이 없어서 고칠 수 있는 병을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 의·식·주 와 더불어 인간의 당연한 권리여야 할 '의료의 권리'는 판자촌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진수를 비롯한 서울대 의대생들을 주축으로 '사회의학연구회'라는 학회가 결성됐고, 그들은 '의료는 국민의 네 번째 권리'라는 명제 하에 판자촌 무료진료활동과 주민의식개혁운동 등을 펼쳐나갔다.
이러한 '학생운동'의 전력때문에 인턴시험에 떨어지고 평소 관심있던 보건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암울했던 유신시절 그의 전력은 가는 곳마다 문제가 됐다. 담당교수의 권유에 따라 만삭의 아내와 함께 쫓기듯 떠난 미국 유학. 아무런 준비없이 도착한 미국에서 반년 가까이 직장을 못 구해 고생하던 그가 가까스로 일터를 잡고 처음 시작한 일은 수술실에서 수술부위를 양옆으로 벌려 잡고 있는 일이었다. 이후 어렵게 인턴 자리를 얻어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나서도 '개업'이라는 편히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다시 MD앤더슨 병원에 들어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폐암 관련 논문만 국제 학술지에 150여 편을 실었을 정도로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가 발표한 여러 임상연구들이 눈에 띄는 치료효과를 거두면서 세계 최고의 폐암권위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26년 동안 힘겹게 거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그가 돌아왔다. 낯선 땅에서의 어려움들 속에서 배운 선진기술을 이젠 고국의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쓰겠다고 말하는 이진수 박사. 그의 특별한 꿈은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기획 : 이종현
연출 : 이모현
대본 : 윤희영
홍보 : 차주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