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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속의 작은 한국 '쇼쿠안도리'의 김근의 사장
도쿄 신주쿠역 부근 '쇼쿠안도리'의 6차선 도로에는 각종 한글·한자 간판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바로 이곳이 최근 몇 년간 급속히 모양을 갖춰가고 있는 새로운 '코리아타운'이다. 그리고, 이 곳 쇼쿠안도리의 대표적인 한국 잡화점 '장터-한국광장'에는 고추장·마늘·배추·젓갈에서부터 미더덕·김치·돌솥·한국 신문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 건너편에는 2백 석 남짓 규모의 대형 음식점인 '고려', 최신 한국 CD·책·비디오 매점인 '코리아 플라자', '호텔 라이온스', 여행사 등이 늘어서 있다. 이렇게 쇼쿠안도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작은 한국의 모습은 모두 김근의 사장이 지난 7년 동안 일궈낸 땀의 결정들이다. 이렇듯 쇼쿠안도리 코리아타운의 역사는 곧 김근의 사장의 성장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신대 대학원생으로 신학에 몰두했던 그가 일본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5년. 그는 민족 통일과 북한 선교 사업에 평생을 걸기로 하고 논문을 위한 북한 자료 입수 차 도일했으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본의 자동 전자정보처리 체제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일본 통산성 외곽단체인 재단법인 유통 시스템 개발 센터 연구원을 거쳐 히토쓰바시 대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러나 그는 그 때 연구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이후 아내와 함께 도시락, 야키니쿠(불고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한국 상사주재원이나 출장사원들을 상대로 숙박지와 통역·정보 등을 제공하는 민박사업을 시작했고, 1993년에는 닛포리에 김치가게를 열었다. 그리고, 한국의 맛과 말과 놀이 문화를 통해 한·일간의 진정한 이해를 도모한다는 사업목표를 세웠다. 가게이름을 '장터-한국(생활문화)광장'으로 지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 우에노·신주쿠 등 도쿄는 물론 오사카·나고야까지 김치가게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한국 식품점들 중 단 한곳도 한국·조선어 이름을 건 곳이 없다는 데 힌트를 얻어, 그는 자신의 가게에 큰 한글 간판을 걸었다.
그가 경영하는 대부분의 영업장의 고객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그리고, 음식점 '고려'에서는 매달 10∼12명의 일본인 고객들을 선정해 2박3일의 서울나들이를 지원한다. 90% 이상의 일본인들이 즐긴다는 김치를 비롯한 최근의 일본 내 한국 음식붐에도 그의 영향이 배어 있다.
이렇듯 일본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한국이 스며들게 하고 있는 김 사장이 새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태권도 상설도장, 한국자료전문 도서관과 한국연극·영화 등 놀이전용극장, 재일동포 역사 등을 정리한 민족박물관 건립 등 나열하기에도 벅찰 정도이다. 일본 속에 작은 한국을 만들고 있는 김근의 사장의 치열한 삶과 계속되는 꿈을 만나본다.
* 발리에 한국인의 발자국을 남긴다! - '아리랑 호텔' 정동일 사장
발리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 candidasa 해변가에는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아담한 호텔 '아리랑'이 있다. 이름만으로도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는 이곳은 정동일 사장이 10여 년에 걸쳐 공들여 이뤄낸 땀의 결과이다.
<동교동 24시를 고발한다>라는 서적으로 불가피하게 한국을 떠나야 했던 정 사장은 1989년 7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딸 지혜와 2개월 관광비자를 얻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머물렀다. 자카르타에서 시작한 하숙집 '지혜네'를 운영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정 사장은 3년 후인 1992년 4월에 3천 8백 평의 대지에 방갈로 56개동을 포함한 총 객실 126개의 호텔 '아리랑'을 세우게 되었다.
이후 56명의 직원을 거느린 인도네시아 최초의 한국인 호텔의 경영자로 우뚝 설 수 있었지만 물질적인 풍요로 오는 아늑함도 잠시였다. 1996년 8월, 다른 곳에 새로운 호텔을 개장하려던 찰나, 외국인에게 매년 갱신하는 체류허가증을 취득하지 못해 전 발리 주지사 아들에게 호텔을 빼앗기는 불운을 겪게 된다.
인도네시아와 하눅을 오가면 3년간 와신상담하던 정동일씨는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끝에 다시 인도네시아 입국을 허용 받아 우여곡절 끝에 10년 임대계약으로 아리랑 호텔을 되찾게 되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리 한국인들의 권익과 단결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는 정동일씨. 그가 키워나가는 한국인 호텔리어의 꿈, 그리고 때묻지 않은 열대의 낙원 발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생활을 찾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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