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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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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BC 특별기획「이제는 말할 수 있다」<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
내용
1980년 8월,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시행된 삼청계획 5호작전. 대상은 깡패와 전과자 등 이른바 불량배, 사회악들이었다. 대상자는 모두 60,755명. 이중에 B와 C급으로 분류된 39,742명이 전국 25개 부대에서 '삼청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검거과정에서부터 문제는 심각했다. 실적을 채우기 위한 무차별 검거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 대상이 되었으며, 이들은 영장도 없이 강제연행되고 재판 없이 형식적인 심사만을 통해 군부대에 강제수용되어 가혹한 훈련과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최고 5년의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만 했다. 모두가 강압에 의한 불법행위였다.

희생은 엄청나고 충격적이었다. 88년 정부의 발표는 사망 54명에 후유증 사망 397명, 상해·장애자 2천8백명...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사망자수만도 발표의 몇 배에 달할 것이란 증언과 주장들이다. 그리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인권이 철저하게 파괴당한 4만명은 누구인가? 정녕 모두가 깡패이고, 전과자인가? 철저히 버림받고, 유린당하고, 파괴당한 채로 22년째 신음하고 있는 '삼청교육대'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조명하고, 추악한 '삼청계획 5호작전'의 실체를 드러낸다.

▶주요내용

1. 사망자 축소, 은폐 의혹 - 54명의 사망자가 전부일까?

1988년 정부가 발표한 삼청교육 사망자 수는 총 54명이다. 그러나 군부대 사망자만도 발표된 수치의 몇 배에 달할 것이라는 피해자들의 주장과, 삼청교육 과정에서 행해진 수많은 가혹 행위들을 감안해 볼 때, 국방부가 발표한 사망자 수와 사망 원인은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국방부는 삼청교육 입소자 및 퇴소자 명단 등 삼청교육 실시와 관련한 서류를 폐기하여 진상의 규명을 더욱 어렵게 하는 등, 사망자 축소·은폐 의혹을 낳고 있다.





2. 삼청교육대 조교 "가혹행위 사망자 자체적으로 처리했다"

순화교육에서부터 삼청교육을 담당했던 조교는 공식 사망자 외에 해당 부대 내 추가사망자가 더 있으며, 사망자의 사체를 자기들 선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전방 모 사단에서 초기 삼청교육을 담당했던 OOO 조교는 자신의 부대에서만 공식 사망자보다 몇 배가 많은 11명의 사망자가 났으며, 이들 가혹행위 사망자를 질병이나 탈영으로 처리하여 보고한 후 신상기록을 자체 폐기했다고 증언했다.

3. '구타사는 질병사로 둔갑'

또한 구타사가 질병사로 은폐되었던 사실들도 확인되었다. 1988년 국방부 발표 자료에 의하면 삼청교육 기간중 사망자의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질병사다(54명 중 66%에 해당하는 36명이 질병으로 사망). 입소 초기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해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자 발생 의혹이 높았던 모 사단의 경우, 사망자 4명 모두 질병 사망자로 처리되었다(한 명은 88년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구타 사망으로 분류).
그러나 입소 3일만에 세균성 심내막염 및 전색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는 신모씨의 경우, 조교들의 집중구타로 사망한 후, 이를 질병사로 은폐한 것이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의무병으로 복무했던 김모씨는 전체 훈련생의 90%가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한 환자였으며, 대부분이 구타로 인해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4. 00사단 총기사건, 추가 사망자 더 있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1명의 사망자가 난 5사단의 경우에도 삼청교육생들을 향한 발포가 이루어져, 공식 사망자외 추가 사망자가 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다. 1981년 6월 20일 감호생들이 비인간적인 대우와 수용기간 연장 등 누적된 불만에 의해 촉발된 집단행동 과정에서 당초 군 측 주장과는 달리 감호생들을 향한 기관총 발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막사 안에 있던 감호생 한 명이 기관총에 맞아 즉사했으며, 또 다른 감호생도 기관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와, 사건의 은폐·축소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5. 당시 검거 경찰도 '억울한 사람이 절반' 시인

이밖에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피해를 입었던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연행된 억울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당시 경찰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으며, 군부대 안에서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행위와 이로 인한 사망사실이 현장에 있었던 군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예약일시 2007-03-07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