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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실리보고서.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미군CIC 요원이자 '백의사'의 단원이라는 사실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언론에서는 김구 암살 배후에 미국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고, 백의사란 단체가 해방기 정치 요인 암살과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해방 후 미군정 기간, 극심한 좌우 이념의 대립과 반목이 계속 되었다. 아군 아니면 적이 되던 시대, 곳곳에서 대립과 충돌이 일어났고 테러·암살사건 기사는 연일 신문을 장식했다. 테러의 위협은 송진우를 시작으로 여운형, 김구에 이르기까지 당시 핵심 정치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테러는 정치적 고비마다 어김없이 발생했고 역사의 물줄기마저 바꾸어 놓았다. 여운형 암살은 좌우 합작을 통한 임시정부 수립의 노력을 수포로 돌려버렸다.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 정부 수립의 꿈 역시 김구 암살사건과 함께 좌절됐다.
송진우, 여운형, 김구 등 해방기 주요 정치 요인 암살범들에게서 '극우주의'라는 공통적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적으로도 이들은 상호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해방기 대표적인 비밀 암살 조직인 백의사에 대한 탐구는 당시 극우주의자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백의사를 통해 해방정국의 요인 암살과 그 정치적 사상적 배경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정치테러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주요 내용
1. 테러 암살 단체의 실체 최초 발굴 50년만에 드러나는 실체, 비밀결사 백의사
1945. 12.28. 고하 송진우 한현우에 의해 피살 1947. 07.19. 몽양 여운형 한지근 일파에 의해 혜화동로터리에서 권총피습,사망 1949. 06.26. 백범 김 구 경교장에서 안두희에 의해 암살되다 정치 격변기에 일어난 요인 암살 사건은 그 정확한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으로만 남아 있었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한 실리보고서는 김구 암살범 안두희가 미 CIC 요원이며 백의사라는 비밀 암살 단체 단원이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해방기 정치 요인 암살 사건들 배후에 백의사가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논란이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실리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백의사는 세간에 알려진 바가 없었고, 지금까지 백의사에 대한 어떠한 역사적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었다. 점조직이라는 단체 특성상 그들의 활동 역시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백의사는 그렇게 조용히 역사 속에서 잊혀질 뻔했다.
그러나 50년만에 7인의 백의사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백의사 주요 암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성열, 최의호, 조재국과의 심층 인터뷰, 백찬옥(염동진 최측근 백관옥의 동생)등 백의사 중책단원 측근의 증언을 통해 백의사 실체에 다가서 보았다.
또한 백의사원 최의호가 10여년간 작업해 온 백의사 주요 단원 녹취록은 여운형 암살, 현준혁 암살, 김일성 암살 미수 사건등에 관한 백의사원들간의 여과없는 생생한 증언이 담겨져 있어 현대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백의사원들의 생생한 증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암살의 진상 발굴
1946년 3월 1일 평양역 광장, 공산당 핵심간부와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3.1절 기념행사에서 김일성을 향해 수류탄 폭탄 투척, 암살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왜 미수에 그치고 말았던 것일까.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백의사원들의 증언,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러-북 합작 영화 <영원한 전우>를 입수,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지금까지 공산당 내부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공산당 당수 현준혁 암살사건(북한 공식 기록1945. 9. 3)과 백의사원들이 털어놓는 사건의 진실! - 현준혁 암살 사건은 백의사 반공테러의 시작이었다. 이밖에도 강양욱(김일성의 외척) 자택 폭파 사건, 김책 테러 미수 사건에 숨은 이야기를 통해 해방기 극우 사상의 뿌리를 생각해본다.
국가사회주의 국가를 꿈꾼다 백의사 사령 염동진, 그는 누구인가?
염동진은 누구인가. 맹인장군 염동진이 어떻게 해서 극우테러단체의 사령관이 되었던 것인가! 백의사 사령 염동진(염응택), 그가 남긴 것은 사진 한장 뿐.
끈질긴 취재 끝에 알아낸 염동진의 조카 김종진. 그는 암살단체 사령관 염동진의 평소 사상과 인간 염동진에 대해 낱낱히 증언하였다. 또한 일본군사자료에서 최초 발굴한 염동진의 흔적은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해방 전 그의 행로를 추적하는 열쇠가 되었다.
낙양군관학교 졸업생 중 유일하게 행로를 파악할 수 없었던 염동진. 졸업 후 그의 행적과 인간 염동진이 겪어야 했을 사상적 갈등을 통해 해방기 극우 테러 집단의 멘탈리티를 반증해본다.
3. 방송사상 최초 인터뷰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의 생생한 증언
"송진우는 민족분열자, 후회 없다." - 한현우 인터뷰 中
방송 사상 최초!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방기 극심했던 좌우대립의 정서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본다. 암살 후 일본에서 살아온 한현우는 아직도 당시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증언은 해방기 암살·테러의 주동자들이 가졌던 공통적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암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 사건에 대해 품어왔던 수많은 의문과 의혹들을 풀어주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4. 여운형 암살의 배후 백의사원들의 증언 녹취로 진상 배후 밝혀져 1947년 5월 12일 몽양 여운형은 한지근 일파에 의해 혜화동 로터리에서 권총 피습됐다. 여운형의 차 바로 앞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여운형 비서의 범인 추격을 저지한 경찰, 전화두절... 여운형 암살사건에 대해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어왔다.
여기에 백의사 단원들의 증언을 단서로 여운형 암살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냈다. 드디어 밝혀지는 여운형 암살의 배후, 그리고 새롭게 드러나는 암살 사건의 정황! 행동대원들이 권총을 건네받은 과정에서부터 암살의 정확한 경위까지- 여운형 암살 사건 배후 인물의 생생한 증언 녹취가 공개된다.
5. 백의사, 단순한 테러 암살 단체인가? "백의사의 활동은 건국 운동"
해방기, 기근과 높은 실업률로 인해 노동자들의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철도노조 파업(1946.9.24), 대구항쟁(1946.10.1)등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가속화되자 곳곳에서 극심한 충돌 사태가 발생했고 백의사는 파업 분쇄 선봉에 나섰다. 피로 물들었던 건국 전야, 백의사는 그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김두한의 대한민청 등 백의사 단원들은 사회 각계 각층에 포진해서 우익세력 확장에 힘썼다. 그들은 '치안이 불안하던 시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올바른 기둥을 세우려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흑백논리로 적과 나를 구분하던 시대. 그들의 활동은 과연 상황논리로써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한국 현대사에 미칠 영향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6. 백의사의 원대한 꿈 - 백의사, 단순한 테러 암살 단체인가? 백의군 창설 계획 - WEDEMEYER 장군에게 보낸 서신
"한국은 지금 중병에 걸려 위독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사회주의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 염동진이 wedemeyer에게 보낸 서신 中
염동진의 백의사는 단순한 극우 테러 조직이었는가. 염사령이 Wedemeyer 장군( Wedemeyer, Albert Coady 당시 연합국 동남아시아 방면군 참모장)에게 보낸 <한국과 만주에 대한 정보>라는 보고서 형식의 서신에서 그의 사상과 꿈을 엿볼 수 있다. 미군정기 그가 꿈꾸는 국가는 "국가사회주의 국가"였다.
Wedemeyer 장군에게 보낸 서신에서 염사령은 국가사회주의 국가 설립의 디딤돌로 '백의군' 창설 계획을 내 비췄다. 소비에트 러시아 파괴를 위한 3차 대전이 일어나야 하고, 이를 위해 백의군이 미국의 활동을 돕겠다는 발상이었다.
염사령은 서신을 통해 백의군 창설에 이유와 조직구성뿐만 아니라 백의군 창설에 드는 세세한 군수품의 개수와 비용까지 보고하고 있다. 이는 그의 꿈이 단순한 우익테러조직 백의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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