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한국정치의 주역이었던 3김의 정치역정과 행보를 살펴봄으로써 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정치의 지난날을 되짚어 보고 한국정치가 선진정치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본다. 4부에서는 문민정부의 개혁과 그 좌절양상을 살펴보고, DJ의 정계복귀와 JP의 창당으로 다시 시작된 신3김시대를 조명해 본다.
내용
1) 문민정부의 개혁과 그 좌절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시대를 연 YS. 기나긴 30년간의 민주화 투쟁을 거쳐 그는 드디어 국가의 통치자로 등장한다. 그는 DJ가 없는 무주공산에서 90%가 넘는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의욕과 자신감에 넘쳐 각종 인사를 단행하고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정치자금 거절선언과 청와대에서의 칼국수의 식사는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 되었고, 그는 계속해서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 율곡사업과 슬롯머신 비리 수사 등 끊임없는 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이렇게 순조롭게 출발했던 YS의 국정운영과 개혁정책은 시간이 갈수록 좌초되기에 이른다. 잘못된 관행과 제도의 개선이 아닌 거침없는 사정 위주의 개혁은 부작용을 낳았고, 근본적인 철학과 확고한 프로그램이 부재한 깜짝 스타일의 개혁은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또한 당을 소외시키고 폭넓은 여론의 수렴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비선 조직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는 국정 운영은 그 독단성과 협소함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결국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노동법 날치기 파동이라는 악수와 한보사태와 김현철 문제 등 각종 의혹과 비리 사건, 그리고 갖가지 대형사고라는 악재까지 겹쳐서 YS정권의 레임덕은 급속하게 진행된다.
오랜 야당시절의 관행과 대여 투쟁의 방식에만 익숙했던 YS는 국가의 통치와 국정 운영에 있어서 갖가지 실정과 시행착오를 드러내었고, 이로써 국민이 가졌던 민주화 세력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실망과 회의로 변모하게 된다.
2) 다시 시작된 3김 시대 - DJ의 정계복귀와 JP의 탈당
97년 대선에서 패배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난다. DJ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민주당은 새로운 지도자들이 부상하게 된다. 전당대회 경선을 통해 9명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한 민주당은 이전의 1인 보스 중심의 정당운영과 호남 중심의 한정된 지역 지지기반을 탈피하고 새로운 정치적 실험을 모색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러 계파간의 갈등으로 내분이 끊이지 않았고, 여당이 개혁을 선점한 상황에서 진정한 야당으로서의 실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DJ의 정계복귀의 명분이 되었고, 야권은 DJ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재편된다. DJ는 아태재단과 내외문제 연구소를 중심으로 각계 인사와 당내의 자기 세력들을 규합해 가기 시작했고, 95년 6.27 지방선거를 계기로 실질적으로 정치를 재개하기에 이른다. 불안한 항로를 계속 해왔던 민주당은 DJ의 출현으로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고, 국민회의 분당으로 거의 와해되기에 이른다.
한편, 민주계와 민정계와 공화계가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는 여당은 점차적으로 갈등과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국정운영과 당정운영에서 소외되어 왔던 JP는 드디어 탈당을 감행하여 자신의 세력과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자민련을 창당하게 된다. DJ의 국민회의 창당과 JP의 자민련 창당으로 끝난 줄 알았던 3김 시대는 다시 막을 열게 된 것이다.
3) 3김청산론이냐 정권교체론이냐 - 97년 대선을 향하여
식언을 한 정치인이라는 비난과 민주당내 신당 반대파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한 DJ는 이를 경계한 YS의 세대교체론적 발언과 노태우 비자금 수수 사건, 그리고 4·11 총선에서의 약세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DJ가 새롭게 내놓은 카드는 정치적 기반과 색깔이 다른 JP와의 공조와 지역주의의 또다른 변형인 수평적 정권교체론이었다. 이른바 지역연합을 바탕으로 여야간의 정권교체를 이루어낸다는 논리였다. 정권교체의 명분은 보수세력과의 연대를 합리화시켰고, 분당에 반대하고 민주당에 잔류했던 통추 세력과의 통합마저 이끌어냈다.
한편, 김영삼과의 차별화를 선언하며 신한국당에서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구축해 갔던 이회창은 3김청산이라는 기치로 이에 맞선다. 당내 최대세력이었던 민주계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9룡이 난립한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이회창은 1인 보스정치와 지역주의라는 구태정치의 상징인 3김과의 차별화를 선언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3김청산이 아니라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주었고, DJ와 JP의 불안한 공조 속에 국민의 시대가 개막된다.
3. 출연자
김광일(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김근태(당시 국민회의 의원), 김원기(당시 민주당 의원), 김윤환(당시 민자당 대표), 김상현(당시 국민회의 의원), 노무현(당시 민주당 의원), 서석재(당시 민자당 의원), 설훈(당시 국민회의 의원), 윤한봉(현 민족미래연구소장), 이기택(당시 민주당 대표), 이부영(당시 민주당 의원), 이훈평(당시 국민회의 의원), 정대철(당시 국민회의 의원), 조부영(당시 자민련 의원), 한화갑(당시 국민회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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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최우철 PD
작가 : 방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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