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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복절 특집다큐멘터리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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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특집다큐멘터리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연출 김환균)을 15일(금) 오전 8시 30분에 방송한다.

● 기획의도

2014년 1월 19일, 안중근 의사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하얼빈 역에 안중근 기념관이 들어서면서, ‘안중근’은 한·중·일 3국의 가장 뜨거운 인물이 되었다. 일본의 외교적 반발을 우려해 안 의사의 기념물 조성을 주저했던 중국이 비밀리에 안중근 기념관을 개관한 일은 중·일 간 외교적 마찰, 중국 내 반일 정서 등 동아시아의 불안한 정세를 방증한다. 그것은 105년 전, 하얼빈 의거 당시 동아시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안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연 우리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하얼빈 의거를 일으킨 위인 정도로만 알고 있지 않은가? 여기 한 장의 엽서가 있다. ‘이토공을 암살한 안중근’이란 설명이 달린 안중근 의사의 사진엽서. 지난 100여 년 간, 안 의사는 순국 이후에도 자신을 ‘암살범’ ‘흉한(兇漢)’ ‘테러리스트’라 규정하려는 일본과 끝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안 의사의 사진엽서는 그 전쟁의 흔적이다.

누가 안 의사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왜 엽서로 만들었을까? 엽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안 의사가 벌인 ‘동양평화론 대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전말과 의미를 밝힌다. 의거 105년, ‘안중근’이 다시 호명된 지금 써내려 가는,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기록이다.

● 관전 포인트

1. 최초 공개되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三軍之勇可奪 匹夫之心不可奪’

안중근 의사의 사진엽서를 추적하던 중 제작진은 지금까지 알려진 적 없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발견했다. 순국 전후에 발매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엽서 속 유묵 사진을 통해서다.

‘三軍之勇可奪 匹夫之心不可奪(삼군지용가탈 필부지심불가탈)’ 이라 쓰인 붓글씨 옆으로 안 의사 특유의 수장(手章)이 뚜렷하다.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팀장은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총 61종이 알려져 있지만, 이 유묵을 본 것은 처음”이라며 “대부분의 유묵은 70년대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번 유묵의 발견은 거의 30년 만의 일”이라 설명했다.

유묵은 ‘대군을 거느리는 용장(勇將)을 사로잡을 수는 있어도 한 평범한 사나이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라 의미로 해석된다.

유묵 내용을 풀이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필부, 즉 평범한 사나이는 바로 안중근 의사를 가리키며, 그가 굳게 먹은 마음은 그 어떤 힘으로도 빼앗거나 바꿀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평했다. 하얼빈 의거를 결행한 안 의사의 굳은 의지와 함께 자신을 ‘평범한 사나이’라 칭한 겸손함이 고스란히 담겨진 유묵인 셈이다.

유묵은 <논어>, 자한(子罕) 편에 실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삼군가탈수야 필부불가탈지야 · 대군을 통솔하는 장수는 사로잡을 수 있지만 어느 평범한 사내가 간직한 뜻은 빼앗을 수 없다)’ 라는 공자의 말을 고쳐 쓴 것으로 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묵이 담긴 엽서의 발행처다. 엽서 뒷면에 적힌 ‘동경인쇄주식회사 대련출장소’는 1910년 당시 여순·대련에서 발행되었던 <만주일일신문>이 인쇄되던 곳이다.

<만주일일신문>은 안 의사의 신문 과정과 공판 내용, 옥 중 생활 등을 구체적으로 취재해 보도했던 곳으로, 그만큼 여순 감옥 내 사정에 밝고 정보 접근이 용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 의사의 옥 중 사진이나 공판을 진행한 일제 관료들의 사진이 담긴 <안중근사건공판속기록>도 이곳에서 동경인쇄주식회사 대련출장소를 통해 인쇄·간행하였다.

엽서에 실린 사진이 <만주일일신문> 1910년 3월26일자에 게재된 것이란 사실도 감안했을 때, 이 엽서는 감옥 내 안 의사의 사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아는 곳에서 발매된 것으로 추정돼 의미가 깊다.

한편 해당 엽서에 안 의사에 대한 존경과 숭모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학계의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순국 전후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되는 안중근 사진엽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단 2건. 꾀죄죄한 용모를 하고 있거나 쇠사슬을 두른 사진으로 만든 엽서들로 ‘흉한’ ‘암살자’란 설명이 있어 비하의 의도가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이번에 발견된 엽서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영정사진으로 삼고 있는, 단정한 모습의 안 의사가 실려 있고 그의 인품을 엿보게 하는 유묵이 담겨져 있어, 어떤 이들을 판매 대상으로 삼은 엽서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이 학계에 던지는 하나의 숙제다.

2. TV 다큐멘터리 최초로 다루는 ‘변절자 안준생’ 논란과 진실

상하이의 실업가들이 시찰단을 꾸려 조선을 방문했다. 그 일행의 한 명이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 박문사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 찾아가 이토의 위패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의 이름은 안준생, 안중근 의사의 아들이었다. 다음 날 그는 이토의 아들, 이토 분키치와 마주 앉았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준생의 말이었다.

안 의사의 의거 후 30년이 흐른 1939년 10월, <경성일보>를 통해 보도된 이 내용은 그간 안중근 연구자들도 언급하기 꺼려하는 논란의 대상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의 아들이 부정하고 사죄를 한 일은 누구라도 인정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것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안중근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졌지만 안준생 이야기를 다룬 다큐는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안준생을 영원히 논란대상으로 남길 것인가. 제작진은 일련의 취재 과정을 통해 안준생의 행위는 일제의 ‘연출’에 불과하단 결론을 내렸다. ‘내선일체’를 선전하던 1930년대의 끝자락에서 안중근이 상징하던 독립 정신을 해치려는 일제의 의도가 이른바 ‘안준생 화해극’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은 당시의 상황을 담은 기록과 증언 등을 통해 안준생 논란의 종지부를 찍는다.

3. TV 최초, 안중근 의사의 조카며느리 박태정 여사 단독 인터뷰

방송사상 최초로 MBC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 선생의 둘째 며느리 박태정 여사(84)를 단독 인터뷰했다.

안 의사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에 언론과의 접촉은 물론 외부와의 교류도 자제해 왔던 박태정 여사. 안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순국 이후로도 그의 정신을 이어온 가문의 이야길 전달해 줄 수 있는 이는 박태정 여사뿐이라는 제작진의 설득에 어렵사리 카메라 앞에 섰다.

“어머님이 저한테 하루는 ‘내가 단지를 허리에 묶어 매고 다녔는데’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그렇게 무서운 걸 어떻게 들고 다니셨어요?’ 그랬어요, 철 없이. 지금 같으면 ‘뭐예요? 좀 보여주세요.’ 라고 했을텐데 무섭다고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어머니이자 안정근 선생의 부인이었던 이정서 여사가 안 의사의 단지(斷指)를 허리춤에 묶고 다녔던 사연을 비롯해 순국 당시 안 의사 가족들이 겪은 아픔, 독립 운동에 투신했던 안 의사 가문 인사들의 행적 등 가문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을 박태정 여사의 입을 통해 생생히 기록해 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태정 여사는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 제작진과의 TV인터뷰가 최초이자 마지막이라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보관해야 할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기획 : 김진만
연출 : 김환균
문의 : 김소정
예약일시 2014-08-13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