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
<기획의도>
* 1974년 11월 14일, 영등포구 양평동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고 최초의 국산 자동차 모델 포니가 발표된 1974년. 온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향해 달리던 그 해 11월 14일, 서울 영등포 양평동 길가에서 생후 3, 4일 된 두 명의 여아가 발견됐다. 아기들은 영등포 경찰서에서 홀트로 보내졌고, ‘K6098번 구희숙‘과 ’K6099번 조성자‘라는 이름으로 해외 입양되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사실은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뒤, 미국으로 입양된 구희숙이 ’K6099‘ 조성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다시 조명된다. 같은 날, 불과 5분 거리에 버려져 있었다는 두 아기. 그날 양평동 뒷골목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아기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
* 일 년에 만 명의 아이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 전세계 흩어진 17만 명의 한국입양인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라는 짐작과 달리 해외입양이 정점에 달했던 것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서울올림픽을 앞두었던 7,80년대다. 2014년. GNP 3만불 시대를 바라보는 G20 국가 대한민국. 하지만 여전히 서울에서 이틀에 한 명씩 아기가 버려지고, 전국적으로 한 해 만여 명의 양육이 포기된다. 정부의 해외입양 억제정책에도 불구하고 2012년 한 해 동안 755명의 아이들이 국외로 입양되었다. 입양아의 90% 이상이 미혼모의 아이들인 것이 현실.
* 해외입양,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 1948년부터 2004년까지 이루어진 전세계 해외입양의 3분의 1은 한국아동이었다. 해외입양은 슬로건처럼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 것일까. 제작진이 취재 중 만난 해외입양인들은 사회적인 성공과 관계없이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해외 입양 60주년. 이제는 입양이 아닌 원가족 중심의 양육제도를 튼튼히 세울 때가 아닐까.
<주요내용>
* 전과목 A학점의 딸, 그러나 백인 부모와 닮을 수 없었던 K6098 구희숙 영등포 양평로에서 발견된 첫 번째 아기, 구희숙은 미국에 입양되어 리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외동딸로 넘치는 기대와 사랑을 받았고 훌륭하게 성장해 지금은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학교생활은 내내 고통스러웠다.
스무 살이 넘도록 한국 음식을 구경해 본 적도 없고, 35세가 될 때까지 한국입양인을 만나본 적도 없었던 그녀는 이방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괴로움을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다. 많은 입양인들이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 엄마, 그리고 K6099 리앤이 처음 ‘혈연’을 찾게 된 것은 첫 아이 타일러를 가졌을 때였다. 임신의 경험은 생모를 떠올리게 했고 아홉 달 품은 아기를 낳아 버린다는 것이 어떤 고통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모를 찾기 시작했다.
친엄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5살, 2살의 어린 아이들을 떼어놓고, 다섯 달 간 서울에 머물며 노력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입양기관에서 35년간 묻어두었던 서류 한 장을 발견했다. 같은 날 영등포 경찰서에서 그녀와 나란히 기록돼 홀트로 인계된 또 한 명의 아기, ‘K6099 조성자’. 1974년 11월 14일, 영등포 양평로에서 발견돼 해외로 입양된 생후 3, 4일의 신생아는 두 명이었다. 혹시 이들은 쌍둥이가 아닐까.
천만 원이 넘는 입양수수료를 받고, 사후 서비스를 해준다는 입양기관에서는 K6099가 어디로 입양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구희숙은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혼자서 5년간 ‘또 다른 아기’ 조성자를 찾아왔다.
* K6099. 조성자 혹은 마이큰 오랜 추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 봄, 한 헌신적인 경찰 덕분이었다. 경찰청 장기실종자수사팀의 도움으로 K6099가 덴마크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인구 560만의 북유럽 선진국 덴마크에는 약 8천 명의 한국입양인이 산다. 7,80년대에는 한 비행기에 십여 명의 입양아들이 함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다. 덴마크 한국입양인 단체와 입양기관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K6099와 연락이 닿았다.
K6099 조성자는 마이큰이라는 이름으로 코펜하겐에 살고 있었다. 유쾌한 남편과 천사 같은 딸을 둔 그녀는 국제적인 컴퓨터 회사의 마케팅 매니저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김치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고 혈육을 찾을 생각이 없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마이큰, 그녀는 입양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주변에 자신의 입양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의 과거가 담긴 상자는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그 존재조차 잊혀진 듯 보였다.
* 아나이스와 사만다, 그리고 리앤과 마이큰 지난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된 쌍둥이 자매 입양인이 외신을 뜨겁게 달구었다. 1987년 11월 부산에서 태어나, 3개월 때 따로 해외로 입양된 사만다와 아나이스가 25년 만에 배우와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재회한 것이다.
파리에 살던 아나이스의 친구가, 유연히 유튜브에 올라온 배우 사만다의 동영상을 보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나이스에게 알렸고, 둘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가 헤어진 쌍둥이라는 걸 확인했다.
1974년 11월 서울에서 헤어져 미국과 덴마크로 입양된 ‘구희숙’ 리앤과 ‘조성자’ 마이큰. 그녀들은 또 다른 헤어진 쌍둥이 입양인일까? 40년이 지난 지금, 그녀들은 다시 서울 영등포에서 만날 수 있을까. 오는 28일(월) 밤 11시 15분에 방송되는 [MBC 다큐스페셜] '1974년 겨울, 영등포의 두 아기‘를 통해 그 이야기가 밝혀진다.
기획 : 김진만 연출 : 임남희 문의 : 김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