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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어느 천재 음악가의 삶, 유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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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일(토) 오전 8시 45분 방송되는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는 천재 음악가 유진박과 고음 천재 신지훈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느 천재 음악가의 삶, 유진박

90년대 후반 ‘한국이 낳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유진박. 2009년, 그가 소속사로부터 감금 및 폭행을 당했다는 파문이 일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후 팬들의 구명운동과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재기를 꿈꾼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하디만 최근 온라인상에 그의 근황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남루한 점퍼 차림으로 식당 한복판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모습은 도무지 그의 명성과는 걸맞지 않아보였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지하철역사 행사 무대에 선 유진박의 모습이 연이어 올라오면서 아직도 소속사와의 노예계약이 끝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2009년 이후 유진박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문투성인 지난 5년, 유진박에게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3세 때 바이올린을 처음 손에 잡은 유진박은 8세 최연소로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10세 때 웨인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13세에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갖는 등 일찍이 세상에 천재성을 입증했다. 유진박은 줄리어드 음대 재학시절, 재미삼아 시작한 전자 바이올린으로 클래식과 록, 재즈 등 장르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연주를 선보여 미국 뉴욕에서 먼저 명성을 얻었다. 국내에 데뷔하자마자 바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데뷔 앨범인 ‘The Bridge’(1997)로 클래식 앨범으로는 유례없던 100만장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유진박과의 첫 만남, 그는 사교 모임의 식사시간에 맞춰 연주를 하고 있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 마이클잭슨의 내한공연 무대 등 크고 화려한 무대들을 장식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무대였다.  

“90년대에 유진박은 인기 많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래요. 지금 유진박은 예전만 못하다.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해요. 그런데 전 여전히 제가 특별하다고 믿고 있어요”
-유진박  

유진박은 현재 자신의 연주가 예전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테크닉적인 부분에 더 치중을 했던 반면 지금은 감정을 보다 풍부하게 싣게 되었다고 만족한다. 한 달에도 십여 차례의 크고 작은 행사 무대에 오른다는 유진박은 또다시 불거진 노예계약설을 일축했다. 공연을 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일 뿐, 팬들이 있는 곳이라면 무대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제작진의 질문에 유진박은 본인의 실력에 걸맞지 않는 잦은 ‘행사’ 공연에 대한 진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정상의 무대에 섰던 그가 크고 작은 행사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촬영 기간 내내 유진박은 변화무쌍했다. 때로는 10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보이다가도 음악을 연주하거나 인터뷰에 응할 때는 예전의 유진박처럼 진지한 자세를 취했다. 이는 20대 초부터 앓고 있는 조울증(양극성장애) 때문이다. 뜻밖에도 유진박은 현재 상태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각기 다른 문제를 겪고 있듯이 자신 역시 양극성장애라는 장애물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저도 독립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스스로를 돌보고 양극성장애도 직접 관리해야겠죠. 다윈의 적자생존이란 말처럼 저도 생존하는 법을 배울 겁니다. 아직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몇 년이 지나면 좀 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유진박  

유진박은 현재 6월 클래식 콘서트를 앞두고 매일 5시간씩 맹연습을 하고 있다. 그의 최근 소식을 안타깝게 생각한 줄리어드 동문들이 그를 돕기 위해 함께 정통 클래식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클래식은 유진박의 음악적 바탕이 된 장르이지만 20년 이상 오직 전자 바이올린에만 몰입해온 지금의 그에겐 새로운 도전이다. 클래식 바이올린과 비올라 앞에서 유진박은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진지한 자세로 활을 잡았다. 줄리어드에서도 내로라했던 연주자답게 클래식 공연도 성공적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과거 천재 음악가라는 명성을 얻었던 음악성은 아직 살아있을까? 최고의 톱스타에서 ‘망가진 천재’라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유진박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함께한다.  

고음 천재, 신지훈의 재발견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혜성 같이 등장한 16세 소녀 신지훈. 특유의 아련한 목소리와 놀라운 고음으로 심사위원으로부터 ‘발성의 교과서’, ‘고음 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최종 6위에 올랐지만 정작 본인과 가족들은 결과를 두고 얼떨떨하다. 사실 그녀는 국제대회인 ‘아시안 피겨 트로피 노비스 부문’ 3위에 입상한 피겨 스케이터 유망주였던 것. 노래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다는 지훈이는 어떻게 노래까지 재능을 갖게 되었을까. 여기엔 남다른 성장 배경이 있었다고 한다.  

지훈이에게도 흑역사가 있었으니,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한글을 몰랐다. 어려서부터 선행 학습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부모님은 대신에 하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려고 노력했다. 미술, 발레, 피아노, 스키 등 하고 싶다는 것은 조금씩이라도 다 해보게 했다. 덕분에 지훈이는 뭐든지 적극적으로 해보고야 마는 욕심 많고 꿈 많은 소녀로 성장했다.

“경험이 중요하죠. 뭐든지 해봐야 알고 해봐야 하는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지훈이가 하겠다고 하는 일은 무조건 찬성이에요” - 아버지 신문수  

지훈이는 이번 가수 오디션에 부모님 몰래 지원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라는 지훈이 부모님의 교육관 덕분에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노래라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가수’의 꿈. 지금 지훈이는 새로운 꿈을 향해 한 발짝 도전중이다.  

오디션 이후 지훈이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폭발이다. 지훈이에겐 또다른 변화가 있다. 피겨 스케이트를 배우며 보컬 트레이닝을 병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은 하나 갖기도 힘든 재능이 둘씩이나 있어 고민이라는 ‘행복한 고민녀’ 신지훈을 만나본다.  

문의 : 홍보국 송은정
예약일시 2013-05-10 1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