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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토) 오전 8시 45분에 방송되는 [사람이다Q]에서는 농구선수 소니아와 최고령 발레리노 이원국 씨의 사연을 담았다.
농구코트 위의 코리안 드림, 루마니아 청소년 농구 국가대표 출신 김소니아
한국인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김소니아는 큰 키와 이국적인 외모로 주목을 받으며 루마니아에서는 모델로 활동했다. 사실 소니아는 루마니아에서 청소년 대표로 뛸 정도로 인정받는 농구 선수였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새로운 농구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저는 그냥 피부 색깔만 다를 뿐이지 다른 선수들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21살이기 때문에 잘못했을 때 지적해주고 때론 행동이 잘못됐을 때 야단도 쳐주고......“ -춘천 우리은행 한새 농구단 위성우 감독
2012년, 소니아는 루마니아에서의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한국 농구계를 선택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격에 강한 그녀의 주특기인 페너트레이션과 리바운드도 수비를 강조하는 감독님 앞에선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고, 개인기 위주의 루마니아 농구와 달리 팀 플레이가 중시되는 한국 농구 역시 그녀가 적응해야 할 부분 중 하나였다.
한국 농구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부족한 한국어 실력. 한국말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그녀이기에 답답한 마음을 숨기는 일도 허다했다. 그런 소니아를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 김태신 씨이다.
“난 한국 하프, 한국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여기 안 오고 싶었어요. 미국 리그로 가고 싶었어요. 생각 많이 했지만 가족들 때문에 아빠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김소니아
5살 때 소니아가 어머니와 함께 루마니아로 건너간 이후 부녀는 일 년에 한번 만남을 가졌다.소니아가 한국에 온 이후로는 떨어져있던 시간을 채우기라도 하듯 부녀는 틈 날 때마다 통화를 하며 서로를 챙긴다. 거제도에 거주하는 그녀의 아버지 역시 시간이 될 때마다 경기를 관람하며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아버지의 나라 그리고 자신의 나라인 한국에서 쏘아 올리는 희망의 슛. 여자농구계의 신예 김소니아가 꾸는 코리안 드림을 소개한다.
끝은 새로운 시작, 최고령 발레리노 이원국
올해 나이 만으로 마흔 여섯인 우리나라 최고령 발레리노 이원국.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한 스무 살에 발레를 시작했지만 발레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보다 앞서갔다.
“오전에 연습하고 오늘 하루 일과 끝. 그리고 오후에는 다음날이라고 생각했죠. 연습시간을 따져보면 12시간 이상을 매일 연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안 되는 동작 있으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반복하고“ -발레리노 이원국
방황했던 18살, 빈번한 가출 끝에 고등학교를 자퇴한 반항심 가득한 소년에게 다가온 발레는 그를 변화시켰다. 길을 걷다가도 턴을 하고 연습실을 내 집보다 자주 들락거렸으며 연습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다. 그 노력의 결과 ‘한국 발레리노의 교과서’라 불리며, 국립발레단 스타 무용수로 한국 발레 르네상스를 이끌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단장님이 워낙 젊으셨을 때부터 연습벌레셨대요. 그래서 무용실에서 아침부터 오셔가지고 사람들 다 나가고 저녁이 되고 밤이 되도 항상 연습실에서 지내셨다고 해요" -발레리나 최예원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그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원국 발레단’을 창단했다. 열 명 남짓한 단원들과 함께 좁은 지하 연습실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구멍이 난 낡은 슈즈를 신고 하루에도 수 십 바퀴 턴을 하며, 여전히 아름다운 몸짓으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한다.
“대중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대학로 소극장이고, 허물없이 그리고 또 격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무대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곳이기도 하고......" -발레리노 이원국
‘이원국 발레단’은 매주 월요일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좁은 소극장을 열정의 땀방울로 가득 채운 발레리노 이원국.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관객 앞에서 춤을 추고 싶다는 그의 끝나지 않은 발레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문의: 홍보국 송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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