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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년특집 [MBC 스페셜] 대재앙과 인간 2부 -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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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MBC 스페셜]은 초토화가 된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일궈내는 사람들을 따라가 ‘삶’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고, 남겨진 과제 등을 짚어본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앞마당에 포탄이 떨어진다면? 삶의 터전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버린다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인재(人災).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람들은 이미 다 보상받고 끝난 줄 알아요.” 흘러가는 시간, 잊혀 가는 관심 속에서 그들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재앙(災殃)은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내 집 앞마당에 포탄이 떨어질 줄 아무도 몰랐듯이,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재(人災)의 현장을 되돌아보고 남아 있는 과제는 무엇인지 [MBC 스페셜]에서 모색해본다.

- 태안 기름유출사건,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07년 12월 7일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서 허베이 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이 충돌하여 원유 1만 2547㎘가 유출되는 사상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1997년 이후 10년 동안 발생한 3915건의 기름유출량 1만 234㎘를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양! 바다는 순식간에 검은 기름과 타르볼로 뒤덮였고 검은 재앙(災殃)이 시작됐다. 당시 사고 지점 근처에서 직격탄을 맞았던 의항리. 기름 피해로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냈던 의항리 주민들은 5년이 지난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

- 2012년 겨울, 다시 찾은 의항리

태안은 사고 당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정치인, 유명인들이 줄지어 방문하는 등 세인의 관심이 집중됐던 곳이다. 특히 120만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작업에 참여한 사례는 세계적인 미담 사례로 회자되기도 했다. 덕분에 5년이 지난 의항리 앞바다는 기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활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오히려 악화됐다. 뜻밖에도 그들은 5년째 사고 피해에 대해 거의 보상받지 못한 상태였다.

-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전대미문의 사태”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사고당사자인 허베이 스피릿 유조선과 삼성중공업. 그런데 주민들은 양측 모두에게 분노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선박의 충돌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피해자들은 일종의 보험회사 같은 성격인 IOPC펀드(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에서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 태안기름유출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IOPC에 신청한 피해보상액 약 2조7000억 원 중 6.4%에 불과한 1800억 원 가량만 보상받았다. 취재진이 찾아갔던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의 경우 주민피해 집계액이 200억원에 달하는데도 주민 보상은 10억원대에 불과한 상태. 태안 지역 주민들 가운데에는 영세한 맨손어업, 소규모 무허가 양식업 종사자가 많아서 IOPC측에 입증할 영수증, 세금납부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사건의 또 다른 원인제공자 삼성중공업은 법적으로 보상액 56억 원을 판결받았다. 선주 측의 중과실이 없으면 사고피해금액과 관계없이 보상액수를 배 무게에 따라 제한하는 “선주책임제한법”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피해액 2조 7천억 원이나 IOPC 추산 피해액 6000억 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 삼성은 도의적 책임으로 1000억 원의 지역발전기금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라며 주민들은 수령을 거부했다. 더 많은 보상을 하라는 주민의 요구와 객관적인 증거자료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삼성의 입장은 한 치의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결국 사고발생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생활고와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태안 주민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상금 지급이 지연되고 지역경제가 피폐해지면서 주민들은 겹시름에 잠겨있는 상태. 2012년 12월, 주민들은 다시 삼성중공업, IOPC, 정부를 상대로 한 힘겨운 투쟁의 길에 올랐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태안기름유출사건 5년을 [MBC 스페셜]에서 짚어봤다.

- 전쟁 같던 1시간, 연평도 포격사건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서해 연평도의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17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무차별 포격 속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 사망, 19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인명피해와 가옥 및 시설 파괴로 인한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휴전협정 이래 군사 공격으로 인한 최초의 민간인 사망 사건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 포격의 현장 속에서 공포에 떨던 연평도 주민들. 북한의 무차별 포격이 가해지던 그날은 아비규환의 전쟁터였다. 포격 후 2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과 연평도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가슴 아팠던 고결한 희생, 2주기를 맞이하다

1시간 7분. 170여발의 포탄이 연평도를 향해 쏟아지던 생사(生死)의 시간.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포격이 멈추자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고 총 326동 정도의 건물이 훼손됐으며, 연평도 전체 임야 556ha의 약 4.5%에 해당하는 25ha가 불타버렸다. 그리고 “꼭 살아남자”는 말을 뒤로하고 적이 쏜 포탄에 산화한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의 고결한 희생을 기리는 2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지금쯤은 복학을 해서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는 그런 모습이 또 상상이 되고... 지울 수 없는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거실에 놓고 자주 보고 얘를 봄으로써 조금 마음의 위안이 되고...” - 故 문광욱 일병 아버지 문영조 씨 인터뷰 중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의 고결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 제막식과 2주기 추모식 현장을 [MBC 스페셜]이 함께했다.

- 연평도의 변신, 하지만 전쟁의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해5도 특별지원법 제정 후 몰라보게 달라진 연평도. 정부 지원으로 32동의 주택이 새로 지어졌고 부분 파손된 239동도 보수공사를 완료했다. 100억원을 들여 최신식의 대피소 7동도 완공했다고 하는데... 최근 연평어장 특유의 단맛을 자랑한다는 연평도 꽃게가 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직 포격의 상흔이 남아 있는 연평도를 [MBC 스페셜]이 취재했다.

■ 백색 연기의 재앙(災殃),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건 ‘100일간의 기록’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3분 구미 4공단 휴브글로벌 공장 근로자의 실수로 탱크로리의 밸브가 열리면서 순도 99.8%의 불산가스가 누출되었다. 직원 5명 사망, 방제작업 인원 18명 부상, 고사(枯死)된 농작물 212㏊, 가축 피해 3943마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구미시 산동면에 위치한 임봉마을을 덮어버린 백색 연기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 갑자기 닥친 재앙, 피난민이 된 주민들

“우리는 이게 일어나기 전까지 불산이란 게 뭔지도 몰랐어요. 근처에 그런 맹독성 약품을 다루는 위험한 공장이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쥐약과 살충제의 주성분인 불산은 세포조직을 쉽게 통과하는 성질이 있고, 특히 피부와 호흡계, 시력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 물질이다. 강력한 독성 때문에, 불산 연기가 지나간 자리의 나뭇잎은 핏빛으로 변했고 수확을 앞둔 과일들과 벼는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건 발생 3시간이 지나서야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이마저도 다음날 안전하다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부가 안전기준으로 삼았던 국립환경과학원의 1ppm이라는 수치는 작업장 안전 기준치의 2배에 달했다. 주민들은 맹독성 가스가 산재한 마을에서 무려 8일간 거주했던 셈! 고통을 호소하던 주민들은 10월 6일 마을을 떠나 대피소에서 피난생활을 시작한다.

- 농민들의 절규, “앞으로 살길이 막막해요”

임봉마을은 원래 주민 다수가 벼농사와 과수원, 축산업에 종사하는 평범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런데 수확을 목전에 두고 일어난 이 불시의 사고로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추석전후 대목을 앞두고 있던 농작물은 불산에 노출되어 소각처분 해야 할 상황이고, 특히 애지중지 길러왔던 가축들도 불산에 노출됐다는 이유만으로 살처분 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배정한 피해보상액마저 주민들이 바라는 보상액과 차이가 있어 주민들의 심경은 참담하기만 하다.

사고발생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시작된 보상 회의. 드디어 팽팽히 맞서던 주민 측과 구미시청 측이 한 자리에 만났다. 하지만 한평생 농사만 지어오던 순박한 농민들에게는 오염된 지역의 향후 미래를 건 이 협상이 쉽지만은 않다. 가을부터 한겨울까지 두 달 이상의 피난민 생활로 지칠대로 지친 피해주민들은 과연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구미 불산 사고 발생 후 100일간의 기록을 [MBC 스페셜]에서 담았다.

문의: 홍보국 조수빈
예약일시 2013-01-09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