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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의도
70년대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등으로 젊은이의 우상이었던 이장희가 돌아왔다. 지난 해 세시봉 열풍의 이면에서 묵묵히 미소만 지었던 이장희가 드디어 육십이 넘은 나이로 새 노래를 들고 대중 앞에 섰다. 그동안 그는 어떻게 지냈던 것일까?
시대의 풍운아이자 자유인인 이장희는 한시도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탁월한 의류 사업가이기도 하고, 또 ‘라디오 코리아’의 CEO이자 미국 전역을 오가며 자아를 성찰하는 탐험가이기도 한 이장희. 연륜이 쌓여갈수록 원숙한 향기를 내기 시작하는 남자, 이장희를 사계절 동안 담아보았다.
◈ 내용
▶ 혜성처럼 사라진 이장희, 혜성처럼 나타나다
지난 2009년, 갑작스레 브라운관에 나타난 이장희는 옛날의 소년 같은 얼굴 그대로 활짝 웃고 있었다. ‘무릎팍 도사’에서 기타를 치며 부른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는 폭발적인 화제를 몰고 왔고, 때마침 불어온 세시봉 열풍으로 대중들의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1970년대를 대표하던 포크 가수들, 일명 ‘세시봉 친구들’은 연일 콘서트를 매진시켰고, 그들의 음원이 때 아닌 호황을 맞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무대에 선 이장희를 볼 수는 없었다. 간간히 울릉도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릴 뿐 좀처럼 베일 뒤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는 왜 대중 앞에서 노래하지 않았을까? 정말로 사라지는 가수가 되길 원했던 걸까? 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대중의 궁금증을 뒤로 하고, 이장희는 또다시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 친구 사실 본 뜻은 조용히 죽은 듯이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야. 그리고 이름 잊혀진 대로…. 뭐 이름 가지고 죽는 거나, 이름 없이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 조영남 인터뷰 중
▶ 울릉도의 대스타
작년 5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이장희가 아름다운 울릉도를 주제로 신곡을 발표했다는 소식이었다. 팬들은 그의 귀환을 반가워했고, 언론 매체들은 울릉도로 몰려가 이장희를 취재했다. 그리고 그를 위한 노래비가 세워지던 날, 이장희는 처음으로 신곡을 대중 앞에서 불렀다. 그가 사는 ‘울릉 천국’ 앞마당을 가득 채운 팬들과 지인들은 열렬한 환호로 그를 반겼다.
“…내가 이런 공연을 한 게 대체 몇 년 만인가. 그래도 내가 행복하구나. 내가 울릉도를 위해서 만든 노래를 군민들에게 첫 번째로 부를 수 있구나. 이것 또한 살아가는 행운이 아닌가…” - 이장희 인터뷰 중
팔색조의 매력을 지닌 울릉도의 사계절! 잊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그 아름다움이었다. 이장희의 못 말리는 울릉도 사랑을 그의 일상과 함께 만나보자.
▶ 콧수염의 사나이, 이장희
1970년대 초. ‘그건 너’, ‘한 잔의 추억’으로 대표되는 그의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그만큼 그의 전성기는 한 낮의 태양처럼 강렬했고, 짧았다. 제멋대로 자란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20대 청춘, 이장희. 그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토록 매료시켰을까? 유래 없던 개성으로 가요계를 장악했던 이장희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더불어 그의 40년 지기 친구들이 밝히는 가슴 짠하고 유쾌한 추억담들을 모아 보았다. 때로는 순박한, 또 때로는 철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이장희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평가될까?
“걔가 노래하면 일단 와~ 웃었어요. 왜냐면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 노래할 때는. 지금도 진지하지만. 지금도 진지해서 우리끼리는 웃어. 너무 진지한 거야.” - 조영남 인터뷰 중
“(장희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어른스러운 면이 많았습니다. 생각도 깊이 하고. 또 어떤 인생관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예술관 같은 것들도 장르를 초월해서 상당히 심도 있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그랬어요.” - 이두식(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 인터뷰 중
▶ 다시 찾은 데스밸리
방송 최초로 이장희의 미국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1980년 이후, 가수 이장희를 버리고 찾아온 미국에서, 그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이민자일 뿐이었다. 미국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이장희는 친구들을 만나고, 레스토랑 사업을 하고, ‘라디오 코리아’로 CEO에 올랐다가, 또 난관에 부딪쳐 좌절하기도 했다. 30~40대를 통틀어 젊음을 바친 그곳을 촬영 팀과 함께 되짚어 보았다.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장희라는 가수, 작곡가. 그런 이미지가 있는 거고, 미국에서는 I’m just nobody.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아닌 내가 좋았던, 미국에서의 ‘나’가 훨씬 편했던 것 같아요.” - 이장희 미국 인터뷰 중
이장희의 미국 생활을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있다. 미국 전역을 여행한 그가, 유독 수백 번을 찾은 곳, 바로 데스밸리이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처럼 황량하고 끝이 없는 사막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곳에서 이장희의 고통스러운 상처와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스스로 던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바로 그 곳에 숨어있었다.
“제가 한 번 저를 해부해본 적이 있어요. 너는 도대체 누구냐. 너는 도대체 뭐냐. 내가 정말 추구하는 게 뭔가. 나는 정말 뭘 좋아하나?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아, 내가 좋아하는 건 자연인 것 같다. 자연이다 하는 생각을 해요.” - 이장희 인터뷰 중
▶ 25년 만의 콘서트
은퇴 이후로는 약 40년 만이고, 1988년 콘서트 이후로 약 23년 만이다. 이장희는 고민 끝에 콘서트 제안을 어렵게 받아들였다. 치열했던 콘서트 준비 기간, 완벽의 완벽을 기하는 이장희의 열정에 국내 최고 기타리스트, 함춘호도 혀를 내둘렀다.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일은 38년 만에 모두 모인 그의 음악 동료, ‘동방의 빛’과의 합주이다. 강근식, 조원익, 유영수, 이호준. 한 때, 팬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던 이들은 이제 호호백발 할아버지들이 되어 연습실에 모여 앉았다. 농담을 하며 껄껄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막상 연습이 시작되자 지난 세월은 모두 없던 것처럼 놀라운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나누는 추억과 감동, 그리고 나이가 무색한 열정까지 함께 만나보자.
“사실은 음악은 거의 이제 잊혀져버리고, 나도 예전에 가수였던 그런 사람으로 기억하다가, 그 노래 만들면서 기타랑 익숙해지고, 콘서트를 하게 되고, 연습을 하게 되고… 이거 참 좋구나. 내가 다른 즐거움 중에 음악이 갑자기 많은 부분으로 다가오는 거를 느끼죠.”
“다시 고향을 찾은 느낌을 가져요. 아, 맞아. 내가 뮤지션이었지….” - 이장희 인터뷰 중
기획 : 전연식 연출 : 이채훈 구성 : 김은희/조연출 : 이한울/ 취재 : 양현옥 문의: 홍보국 강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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