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가을 윤동주는 일본으로 향했다. 조국에서의 마지막 시 ‘참회록’을 쓴 직후였다. 3년이 조금 지나 이역의 땅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기까지 일본에서 남긴 그의 시는 5편. 친지들이 위험을 무릅쓴 노력으로 지켜 낸 그의 시는 해방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 일본인들에 의한 실증적 연구가 전해지고 윤동주의 시는 다시 다각도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윤동주를 기리고 그의 시를 즐겨 읽는 일본인들의 모임도 알려졌다. 윤동주의 그 무엇이 일본인들의 가슴에 다가간 걸까? 시를 애송하고 연구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그의 모습을 통해 이 가을 윤동주를 다시 생각해 본다.
1. 한글로 시를 쓴 식민지 청년,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서
한국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재한 일본인 대학원생 기시 카나코. 한국에 온 뒤 3번째 가을을 맞는 기시 카나코는 한국문학을 공부하던 중 윤동주의 시를 접한 뒤 그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윤동주는 서울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41년 가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한글사용이 금지되었던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적지나 다름없는 일본 땅 한복판에서 그는 한글로 된 시를 썼다. 결국 윤동주는 1943년 7월에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체포되었고 이후 후쿠오카 형무소에 복역하던 중 광복을 반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은 뒤에 ‘시인’이라는 말을 듣게 된 윤동주의 첫 시집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햇빛을 보게 되었다. 1948년 발간된 이 초판본을 비롯한 그의 유작과 유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윤인석 교수는 윤동주의 동생인 윤일주의 아들이다. 윤동주의 호흡이 남아있는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조카 윤인석 교수. 혹시라도 순수한 뜻이 훼손될까 조심스레 공개한 유품들 앞에서 기시 카나코는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재한 일본인인 그녀가 윤동주의 흔적을 보며 눈물을 보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2.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의 사람들
한국 못지않게 일본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동주. 그들은 왜 윤동주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기시 카나코는 먼저 도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기시 카나코가 만난 사람은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의 회원인 야나기하라 야스코. 릿쿄대 출신인 그녀를 통해 기시 카나코는 윤동주의 릿쿄대 시절 이야기를 알게 된다. ‘욘사마’보다 ‘윤사마’가 더 좋다고 말하는 그녀는 오늘도 윤동주를 기리는 시를 쓴다.
도쿄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은 와세다대 교수인 오오무라 마스오. 윤동주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해온 그는 1985년 만주의 윤동주 묘를 처음 확인했고 일본어로 번역된 윤동주 시의 번역 문제점을 재기하기도 했다.
“그가 출발했던 지점은 한국인 연구자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원전실증주의 그리고 작가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추적이었다... 그의 체험적인 윤동주 연구로 인해 일본 내의 한국근대문학연구는 그 폭이 훨씬 넓어지고 깊어졌다.”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김응교 교수
기시 카나코가 도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교토. 그곳에서 만난 안자이 이쿠로 교수는 윤동주 시비건립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모임의 회원들과 함께 매달 교토부청에 시비건립을 요청하고 있다. 안자이 이쿠로 교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곤타니 노부코 역시 윤동주 시비건립을 허가받기 위해 직접 대자보를 만들기까지 했다. 이들이 3년 째 매달 시비건립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시 카나코가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간 마지막 발걸음은 후쿠오카에 닿았다. 윤동주가 생을 마감한 그 곳은 지금 윤동주 시를 공부하는 수업이 한창이다.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의 대표로서 강좌를 하고 있는 마나기 미키코. 윤동주가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그녀는, “비록 윤동주는 죽었지만 그의 시와 정신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제 시대를 공부하기 굉장히 힘들었지만 윤동주의 시에는 그런 원망도 괴로움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쉽게 배울 수 있었어요. 그 분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우지 않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윤동주 시인 스터디 모임 회원 인터뷰 中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의 사람들은 항일시인이었던 그를 연구하면서 오히려 평화를 배워가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고 있었다.
3. 평화의 상징으로 다시 만나는 윤동주
기시 카나코가 만난 사람들이 윤동주 시를 좋아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서정성과 순수한 내면세계, 시대의 아픔을 이겨낸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의 초대 대표 니시오카는 윤동주의 <서시>에서 발견한 매력을 한 단어로 ‘매직’이라고 표현했다. 과거 식민지 시대를 일본과 한국이 윤동주의 시를 통해 함께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순수했던 식민지 청년 윤동주. 그래서 더욱 처절했던 그의 생애를 떠올리며 모인 사람들은 오늘도 윤동주의 시를 낭송한다. 이 가을, 평화의 상징이 되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가 주목하는 시인 윤동주를 새롭게 만나보자.
기 획 : 전연식
연 출 : 최우철
글.구성 : 윤성아
문 의 : 홍보국 한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