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인식과 억측으로 평생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던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경기도
포천시 끝자락에 위치한 장자마을. 처음 제작진이 찾아 갔을 때 할머니들은 찐 옥수수와 커
피를 건넨 후 먹는지 안 먹는지를 지켜봤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낯선 외부인을 시험한 것이
다. 그들은 한센인 합창단이다.
좌충우돌 할머니 합창단
악보는 둘째 치고 노래 가사도 읽지 못하는 13명의 까막눈 할머니들이 작년, 노래교실을 시작으로 합창단을 결성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글씨를 배웠고 1년이 지난 지금은 더듬더듬 노래 가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글씨를 몰라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노래방에 가는 것이 취미가 된 할머니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화면에 나오는 글씨를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춘자씨는 16살에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쫓기듯 소록도에 들어갔다. 소록도에 살면서 같은 한센인 남편과 결혼을 한 후, 두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낳기 위해 삶의 터전에서 도망쳤다. 춘자씨의 두 아이를 낙태시킨 사람들이 바로 소록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살았던 지난 40년이 그녀를 고집불통 ‘욕쟁이 할머니’, ‘싸움 닭’으로 만들었다.
합창대회 곡을 정하던 날, 춘자씨는 ‘산장의 여인’이라는 곡을 추천했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가 떠오른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모두 이 곡을 반대했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도 다른 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하모니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곡을 정하는 일에서부터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 할머니 합창단. 결국 합창대회 날 부를 곡은 한센인이기에 떠나야 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고향의 봄’과 이들이 바라는 앞으로의 희망이 담긴 ‘잘 살 거야’ 두곡으로 정해졌다.
이번 대회가 갖는 의미는 크다. 순위를 떠나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한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회 하루 전, "나는 한센인입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내레이션을 할 것인지 말 것인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평생 죄인처럼 숨어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기에 사람들 앞에서 한센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연습실 무단결석과 잠적 사태!!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뭉개진 두 손으로 자녀들을 곱게 잘 키운 희자씨. 합창은 희자씨의 자녀들도 바라고 바라던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희자씨가 급하게 제작진을 찾았다. 본인은 방송에 나와도 아무렇지 않지만 엄마가 한센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사회생활을 하는 자녀들에게 혹여 피해라도 될까봐 겁이 난다는 것이다. 제작진을 눈물짓게 한 건 희자씨뿐만이 아니었다.
줄줄이 이어진 할머니들의 연습실 무단결석과 잠적 사태. 어제까지만 해도 밝은 얼굴로 촬영에 임하던 이들이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과연 이들은 무사히 합창 대회에 설 수 있을까?
연 출 : 김동희
글, 구성 : 고희갑
문 의 : 홍보국 최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