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그램명 : [MBC스페셜] - 고졸인생 생존기
▶ 방송시간 : 2011년 9월 9일 (금) 밤 11:05~ 12:15
▶ 기획의도
80%가 우르르 대학으로 몰려가고 나면 20%의 젊음이 낙오병처럼 뒤에 남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러운 ‘고졸인생’이 시작된다. ‘고졸’은 평생 벗어나기 힘든 굴레로 작용한다.
고졸과 대졸의 임금 비율은 100:160. 일반적으로 고졸자는 대졸자보다 더 오래 일하고 더 적게 받으며 더 가난하다. 간혹 ‘고졸신화’로 불리는 빛나는 사례도 있다. 뛰어난 재능과 남다른 노력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고졸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영감을 주는 감동적인 휴먼스토리의 주역들. 반면 극소수에 불과한 성공사례는 고졸의 성공신화가 현실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생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고졸인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느리지만 묵묵히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고졸인생들도 많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꼭 이루고 싶은 저마다의 꿈을 짊어지고서.
고졸로 충분히 대우받고 고졸로 충분히 행복한 사회는 가능할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마주치는 고졸인생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 주요 내용
1. OECD 최고의 대학 진학률 83%, 나머지 인생을 찾아서
대한민국은 전체 고등학생의 83%가 대학으로 향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학은 선택’이라고 말하면서 당연히 대학을 선택하고, 대학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외면한다. 그렇다면 대학으로 가지 않은 나머지 청춘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 사회의 ‘고졸’들을 찾아나서 보기로 했다.
고졸을 만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들은 거대한 학력 차별의 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스스로를 감추고 싶어 했다. 고졸이면서 고졸이기를 밝히기 꺼려했고, 힘들고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도 그에 대한 하소연조차 마음껏 하지 못했다. 많은 고졸들이 취재를 거부했고, 몇몇 이들은 취재에 응했으나 이름과 얼굴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졸은 어디에나 있을 것 같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2. 빛나거나 혹은 숨어버리거나 - 우리사회 고졸과의 대면
한국은 철저한 학력사회다. 그 속에서 고졸로 성공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지극히 드물게 알려진 희귀한 성공사례들은 고졸의 사회적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반증한다. 누군가는 이 땅에서 대학이 선택이고 투자를 요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누구나 당연히 가는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거나 선택할 수 없었던 고졸들은 말한다. 이 땅에서 대학 포기는 곧 ‘박탈’이라고. 고졸들에게는 ‘성공’ 이전에 ‘생존’의 문제가 더 어렵고 시급하다.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이 땅의 고졸들을 어렵게 만났다.
석 줄짜리 이력서- 밀레니엄 힐튼호텔 박효남 (50)
국내 특급호텔에서 총주방장을 맡고 있는 박효남(50) 씨는 ‘최연소’와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을 몰고 다니는 세계적인 스타 요리사다. 38세 때 업계 최연소 이사가 됐고, 역시 최연소의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외국계 특급호텔 총주방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박효남 씨는 사실 고졸도 아닌 중졸이다. 그가 가진 화려한 타이틀은 남들보다 몇 십 배 더 치열하게 달리고 무섭게 노력한 결과다. 매일 밤 달걀을 쥐고 감자 깎는 연습을 반복하고, 남들보다 2시간씩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피땀 어린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죽기 살기로 해야 됩니다. 죽기 살기로 해야 살아남죠.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는 또 거기서 한 발 더 뛰어야 되니까”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스스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그의 성공담은 화려하지만, 그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을 꿈꿀 수조차 없는 현실은 쓰디쓰다.
사랑은 장벽을 넘어서 - 배수현 (31)
고졸은 연애도, 결혼도 힘들다.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용수염(꿀타래) 제조 3년차 배수현 씨(31)는 사회생활 12년째인 고졸. 생선상자를 나르는 일부터 부동산 중개까지 지금껏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그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바로 여자친구 때문이다.
“여자 친구는 대졸인데 저는 고졸이고. (부모님이) 약간 걱정을 하셨던 모양이에요. 헤어져라.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은 것은 둘 간의 사랑이 아니라 학력 차이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주변의 반대였다. 부모의 반대로 잠시 헤어졌던 두 사람은 최근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대학졸업장이 배우자 선택에도 필수요건이 된 오늘날, 두 사람은 학력 차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위조하고 싶다 - 고졸 구직자 이은경 (30)
한 달째 구직중인 이은경 씨(30)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한 그녀는 지난 10년 간 수많은 직장을 전전했지만, 주어지는 일자리는 임시직이나 계약직뿐이었다. 원래 여군을 꿈꾸었다는 은경 씨. 여군 합격에 도움이 된다는 대형면허까지 어렵사리 취득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고, 결국 나이제한에 걸렸다. 계속되는 탈락의 이유가 학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경 씨는 이력서에 고졸 대신 ‘대학중퇴’라고 적었다. 결국 허위기재 사실이 들통 나 일하던 회사에서 쫓겨났다.
“차마 (대학)졸업이라는 말은 못하고 중퇴라고 하면 요하는 서류는 없으니까..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중퇴했다, 하지만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거든요”
오늘 하루에만 몇 통의 이력서를 보냈는지 기억하기 어렵다는 은경 씨의 꿈은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그리 크지도, 어렵지도 않은 그 꿈이 그녀에게는 왜 그렇게 힘든 것일까. 은경 씨에게 ‘고졸’이란 단어는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자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굴레다.
고졸, 세상을 건너는 가장 힘든 방식 - 대학교수 이귀봉 (52)
컴퓨터 전산시스템 관련 분야의 박사이자 대학교수인 이귀봉 씨(52)는 고졸이라는 이유로 지난 30년 동안 저임금과 진급 누락, 따돌림 등 부당처우에 시달려야 했다. 실력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그. 항의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졸 주제에’라는 비난과 손가락질뿐이었다.
“잘리지 않으려고, 남들한테 뒤쳐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어요. 남들 급여 40만원 받을 때 나는 13만원 받아가면서 일을 배웠어요. 고졸이니까”
이귀봉 씨에게 남은 것은 끝없이 긴 이력서 한 장. 잦은 해고와 퇴사, 반복되는 이직의 결과다. 이력서는 한국사회의 학력차별이라는 폭력이 그의 인생에 남긴 긴 흉터인 셈이다. 결국 이귀봉 씨는 ‘대학졸업’이라는 타이틀을 따는 길을 선택했고, 이후 박사학위까지 추가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요. 나 객관적으로 증명할 박사학위 자격증 있어요. 그런데 애들 가르치는데 있어서 실력은 예전보다 못해요. 자, 지금의 제가 옳습니까? 아니면 야전의 현장 감각이 살아 있어서 팔팔 뛸 때 그때가 더 좋습니까?”
그가 대학에 간 이유 - DJ DOC 김창렬 (39)
성공한 이들에게도 상처는 있다. 자칭 ‘고퇴그룹’이라던 DJ DOC의 김창렬 씨는 가수로서 성공했지만, 끝내 학력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창렬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지 21년 만에 검정고시에 도전, 얼마 전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그런데 그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자신의 학력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고 했다.
“아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요. 나중에 아들이 또 나의 길을 똑같이 밟게 되면, 아빠로선 좀 서운하고 미안한 감이 들 것 같아서..”
창렬 씨의 바람은 굳이 공부를 안 해도 하나의 재능만 있으면 그 사람을 온전히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당당하게 성공한 듯 보이던 그에게 학력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인생의 숙제로 남았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꿈이 뜻을 만나다 - 학력차별 없는 회사 미래테크
고졸로서 충분히 인정받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는 가능할까? 경남 함안에 위치한 작은 회사 ‘미래테크’에는 학력차별이 없다. 고졸 출신인 박희천 사장이 고졸과 대졸사원들이 똑같은 임금을 받고 능력에 따라 승진하도록 아예 회사 규정을 바꿔버린 것이다. 미래테크의 고졸들에게는 꿈꿀 수 있는 밝은 미래가 있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 1년 후에 누구나 주임은 의무적으로 달아준다. 그 다음 1년 후부터 대졸이든 고졸이든 능력되는 사람이 진급한다... 초기에는 대졸 사원들이 좀 내가 불리한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사실 놓고 보면 대졸을 홀대하는 게 아니고 고졸을 올려주는 거죠” (박희천/ 미래테크 사장)
3.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가 만난 몇몇의 고졸들은 말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볼 것이고 꿈을 이뤄볼 것이라고.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갈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꿈꾸는 그곳에 다다를 지도 모른다고. 파란만장 이력서의 주인공 이귀봉 씨가 진정으로 원했던 사회, ‘고졸이 살 수 있는, 고졸 학력으로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전혀 부담이 없고 불편함이 없는 사회’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미래테크 젊은 고졸들의 맑은 눈빛이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 제작진
연출 이정식 / 글,구성 전미진 / 조연출 강인택 / 취재 김보미, 박미주
문의 : 한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