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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BC 스페셜] 8.15 특집 ‘오모니(母)’ - 재일동포 2세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애절한 사모곡
내용

▶ 프로그램명 : [MBC 스페셜] 8.15 특집 ‘오모니(母)’ - 재일동포 2세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애절한 사모곡


기획의도

재일동포 2세 정치학자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사모곡 “오모니”(어머니의 일본어 발음)는 작년 일본에서 34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한글도 일본어도 모르는 문맹으로 태평양전쟁 말기 16세에 건너 간 일본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 낸 어머니는 재일 1세의 한 서린 표상이다. 일본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활발한 참여를 계속해 온 강 교수는 재일 1세의 삶이 곧 자신의 원형이라 말한다. 어머니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그는 재일동포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을 오늘도 지적한다. 그의 표현처럼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과거를 향한 전진’을 프로그램의 주제로 해 재일 1세 어머니와 아들의 현재를 이어 본다.


주요내용


1. 세계 속의 당당한 재일 2세, 강상중

한국국적을 가진 최초의 도쿄대 교수, 100만부 이상이 팔린 <고민하는 힘>을 비롯한 많은 베스트셀러의 저자! 재일 2세 나가노 데츠오(永野鐵男)로 태어나 강상중(姜尙中) 으로 살고 있는 그는 일본 사회에서 강한 발언력을 가진 인물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강상중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을 ‘강상중 현상’이라고까지 말한다. 그의 이례적인 인기는 미디어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각종 TV 토론프로그램은 물론 오락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도 출연할 만큼 일본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대학과 미디어를 오가며 세계 속의 재일을 조명하는 강상중. 그가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일교포 2세로 타향에서 60년을 살아온 강상중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2. 연약했지만 부러지지 않았던 어머니 그리고 재일 1세들

강상중의 뿌리이자 삶의 원동력은 그의 어머니 우순남(禹順南), 일본이름 하루꼬(春子). 경남 진해가 고향인 어머니는 1941년 벚꽃이 흩날리던 봄, 그녀의 나이 16살이 되던 해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약혼자를 찾아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홀로 먼 길을 떠나는 것이 두렵기만 했던 소녀의 손에는 약혼자가 있는 일본주소가 적힌 종이쪽지 한 장 뿐이었다. 한글도 일본어도 모르던 어머니가 찾아간 곳은 당시 군수공장 소재지였던 도쿄 인근 스가모(巢鴨). 그곳에서 경남 창원이 고향인 강상중의 아버지 강대우(姜大禹), 일본이름 나가노 게이야(永野馨也)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다. 타향에서의 단란한 가정생활은 이들에게 사치였던 것일까. 1945년의 나고야대공습은 큰아들 하루오(春男)를 앗아가고 말았다.


사자(死者)를 위로해야 살아있는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순수한 바람을 간직했던 어머니는 그 때부터 매년 하루오의 기일에 굿을 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추는 어머니의 무무(巫舞)는 어린 강상중을 부끄럽게 했다. 귀신 들린 듯한 어머니의 모습을 받아들이기에 그는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것이 가족에 대한 애정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재일(在日)로서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시에 구마모토(熊本)로 피난을 간 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양돈, 밀주제조부터 폐품회수업까지 억척스럽게 살림을 해야 했다. 당시 일본에서 재일로 사는 것은 ‘밑바닥’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국의 내전은 이들을 밀어내고 있었고 일본에서의 차별과 제약은 입에 풀칠하는 것 정도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일 취락지는 언제나 긴장과 공포, 분노로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강한 인내와 성실함으로 ‘나가노상점(永野商店)’이라는 이름의 폐품회수업을 2대에 걸친 사업으로 번창시켜 현재는 큰아들 마사오가 이어가고 있다.

타향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며 살아왔던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죽고 10년 뒤, 어머니도 그 길을 따라갔다. 어머니의 1주기 제사를 마치고 난 얼마 후, 형수로부터 전해 받은 어머니의 유언 테이프는 평생 글을 모르고 살던 어머니의 삶의 흔적과 강상중에 대한 사랑을 읊고 있었다.


같은 재일 1세지만 다른 인생을 살았던 강상중의 삼촌 강대성과 이와모토 마사오 아저씨.

강대성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는 헌병으로, 패전 후에는 한국으로 건너가 법무참모까지 지낸 소위 ‘엘리트’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인생 뒤에 비치는 쓸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는데...

강상중의 가족과 한지붕 아래 살았던 이와모토 마사오, 한국이름 이상수. 그가 강상중과 인연을 맺은 건 야쿠자에 몸담고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암흑가를 전전하던 이와모토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6.25를 앞둔 혼란기에 혼자만 강상중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부터 강상중의 가업을 도와주며 함께 살았고 어린 강상중을 자식처럼 귀여워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감춘 채 뽀얀 담배연기와 긴 한숨으로 평생을 살았던 그는 결국 가족을 다시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고향을 가슴 깊이 묻고 타국에서의 삶을 묵묵히 감당했던 재일 1세들. 한국에서는 ‘반쪽바리’, 일본에서는 ‘제3국인’ 취급을 받아야 했지만 절대 흔들림 없었던 그들의 인생은 이대로 잊혀지고 마는 것일까.



3. 어머니의 과거를 향한 발걸음

1950년 6.25전쟁의 참상이 한국 땅에 빚어지고 있을 때, 강상중은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시내의 조선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강상중의 꿈은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꿈을 어머니는 굉장히 좋아하셨다. 야구선수는 실력으로 승부를 보기 때문에 재일이라고 해도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재일의 한계에 대한 어머니의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도쿄로 가출을 감행했지만 더 넓은 곳으로 갈수록 위축될 뿐이었다.


“대학을 나와도 재일은 취직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될 바에야 하리모토 씨, 장훈 씨처럼 야구를 하면 좋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강상중 인터뷰 中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한 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앞의 신사에서 재일 2세가 분신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의 이름은 야마무라 마사아키(山村政明), 한국이름 양정명(梁政明). 태생에 대한 끝없는 고뇌에도 불구하고 답을 찾지 못한 그는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가 ‘자아 찾기’에 지쳤다는 것은 강상중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와 달리 강상중은 생(生)의 길을 택했다. 강상중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재일 1세 아저씨들의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다. 고립된 재일의 삶이었지만 한국적인 푸근한 온기와 역경을 이겨나가는 모습은 강상중에게 용기와 동시에 그들의 비애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혼란과 방황 속에 살던 강상중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1970년대 초, 숙부를 따라 한국에 간 뒤 나가노 데츠오를 버리고 ‘강상중’으로 살게 된 것이다. 재일이라는 이유로 억압받았던 족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았을 뿐 아니라 그의 생각과 가치관 전체를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미디어를 통해 재일을 위한 활발한 발언활동을 했으며 1998년 동경대학 사회정보 연구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재일로서는 최초의 도쿄대 정보학 교수가 되었다.


“그러한 발언과 활동은 대리행위에 가깝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1세들의 ‘한(恨)’을 알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망각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 1세들과 나와의 유대를 이어갈 수 있는 의식적인 행위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 그들을 생각하면 나는 한 발도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다.” - <재일 강상중> 中


어머니가 좋아했던 벚꽃은 아직도 봄만 되면 진해 곳곳을 수놓는다. 어머니의 고향이자 모든 재일교포들의 모국인 대한민국. 고향을 품고 타향에서 살아왔던 그들의 과거를 향해 강상중은 오늘도 바쁜 걸음으로 전진하고 있다.


▶ 제작진

기획 : 전연식

 연출 : 최우철

 글.구성 : 정수경

 조연출 : 민병선, 양철진

 취재 : 지윤미

 문의 : 한임경

예약일시 2011-08-10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