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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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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PD수첩] 911회 시선1. 군번줄로 돌아온 아들 시선 2. 돌아오지 못한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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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1. 군번줄로 돌아온 아들

 방송일 : 2011.7.26 화요일 밤 11시15분

  기  획 : 김철진 CP

  연  출 : 김영호 PD


제 때 치료 받지 못해 죽는 병사가 늘고 있다.

군병원의 오진으로 장애가 생겼다고 호소하는 병사와 가족들

군내 의료시스템 문제는 무엇인지 취재했다.


▲ 8번의 기회!

지난 4월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故 노우빈 훈련병.

 

“우리 애는 살 수 있었다고요.”


그가 살 수 있었던 8번의 기회. 가장 큰 기회는 4월 22일, 노군이 사망하기 2일 전이었다. 27연대 훈련병 한 명이 뇌수막염으로 확인된 것이다. 병원 측은 전염병 발생 사실을 훈련소에 알리고 항생제 복용 통보를 내렸다. 하지만 군은 훈련병과 동일 생활관 27명에게만 항생제를 투약했다. 노군은 30연대 교육대 훈련병. 이웃한 연대로 항생제를 복용하지 못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야간 행군 전 노군은 고열과 기침에 시달렸던 상태였다. 그러나 야간 행군에 제외되지 못했다. 행군 시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동행한 군의관과 앰뷸런스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행군에서 돌아와서 상태는 악화됐다.


“애가 이상해요 라고 한번만 해서 전달 됐으면 그 다음날도 빨리 후송이 됐으면...”


의무병은 군의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타이레놀만을 건넸다. 위생병은 아픈 병사들을 걸러서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의료자격이 없는 의무병이 자체판단을 한 것이다. 노군은 밤새 불침번에게 죽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병원으로 보내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진료는 받지 못했다. 노군의 진료차례가 왔을 때는 이미 군의관은 퇴근한 후였다. 군의관이 정해진 시간에 순회 진료하는 교육대 의료시스템 때문이다. 마지막 기회였다. 부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노군은 쇼크로 쓰러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저희가 막 흔드니까, ‘우빈아, 사랑해’하니까 자기도 약간 반응을 보이면서 인공 호흡기로 거품을 내뿜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라고요.”


노우빈 군은 그날 새벽 숨을 거뒀다.


“전화라도 빨리 해주지. 마지막 목소리 한 번 못 듣고 죽은 애를 본거예요.”

“당신들 아들이어도 그렇게 했겠어요? 대한민국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 아이는 없단 말이에요.”


사망할 때까지 군의관을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노군. 군내 의료 실태를 이 취재했다.   

시선2.  돌아오지 못한 내 아들

 방송일 : 2011. 7. 26 화요일 밤 11시 15분

  기  획 : 김철진 CP

  연  출 : 임경식PD


2011년 7월 10일. 해병 1사단 부대 막사 안에서 정 일병(20세)이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해병 2사단에서 총기사고가 벌어진 지 불과 6일 뒤였다.

정 일병의 유서엔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 정 일병 자살 사건


“중요한건 내 아들은 맞아서 죽을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엄청나게 정신적 고통을 심하게 받았던 거예요.“


해병대에 자원입대했고, 누구보다 해병대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정 일병.

그러나 입대한지 8개월 만에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정 일병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망 3개월 전인 3월 28일, 정 일병이 선임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보고가 군 지휘부에 알려졌다. 정 일병은 가혹 행위의 피해자 신분으로 헌병대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헌병대 조사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면 선임과 후임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기수열외’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유족은 전했다. 결국 조사는 단순 구타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유족들은 헌병대 조사 뒤에도 제대로 된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정 일병의 부검 결과, 가슴 부위에서 약 일주일 전 구타당한 흔적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멍이 발견됐다. 해병대에서 사병들의 몸 상태와 구타, 가혹행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위생순검’. 정 일병 사망 3일전에도 위생순검은 실시됐다.

그러나 정 일병의 가슴에 있었던 멍은 발견되지 못했다.

유족들은 철저한 위생순검으로 멍 자국을 발견했더라면 정 일병의 마지막 선택까지는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 일병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국방부와 해병대측은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을 거부했다.


숨진 정 일병은 사망 20일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탈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8개월간의 군 생활동안 정 일병의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었나? 제 2의 정 일병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없는가? 이 취재했다.

예약일시 2011-07-25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