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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MBC스페셜」츠카 코헤이와 김봉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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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의도

일본 청년 문화의 선두주자이며 신화적인 존재였던 츠카 코헤이!

재일교포 출신의 극자가 겸 연출가였던 그는 일본 현대 연극의 전설로 평가받는다.

작년 7월, 타계한 그의 또 다른 이름은 김봉웅이다.


그는 자신의 유골을 대한해협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는 재일교포로서 살아왔던 그의 인생을 짐작할 수 있는데...

재일교포 2세 김봉웅에서

일본 현대 연극의 전설 츠카 코헤이가 되기까지...

불우성을 딛고 일본 문화계의 신화적 존재가 된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재일한국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선입견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 주요내용


# 재일 교포 극작가 일본 열도를 뒤흔들다

1974년 25세의 최연소 나이로 키시다 희곡상을 수상

1982년 재일교포 작가로서는 최초로 나오키 문학상 수상

2007년 외국인 최초로 시쥬포 문화훈장 수장
 

1973년 <아타미 살인사건>이라는 희곡을 들고 혜성처럼 나타난 츠카 코헤이.

그는 이 작품으로 스물다섯이라는 최연소 나이에 키시다 희곡상의 영예를 안으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소설·영화·드라마화 되며 작품성과 대중성까지 인정받게 된다.

일본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츠카 코헤이!

그는 한국인 김봉웅 이었다.

# 조국은 왜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가!

작년 7월, 62세의 나이로 타계한 츠카 코헤이. 너무 이른 죽음에 일본 열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조국엔 그의 이름 석 자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

“일본 연극계에선 츠카 이전의 츠카는 없고 츠카 이후의 츠카는 없다.” 라고 말 할 정도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츠카 씨가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건 정말 뜻밖이에요. 정말 뜻밖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일본) 가토가와 서점 회장 INT


# 김봉웅이 츠카 코헤이가 되기까지...

1943년 일본으로 이주한 그의 부모는 후쿠오카 작은 탄광에서 흘러나오는 고철을 취급하는 사업을 했다. 재일교포는 찾아보기 힘든 작은 마을. 유년시절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말하기 꺼려하는 아이로 자란다.

와타나베라고 근처 살던 친구가 츠카네 집 유리창에 돌을 던졌다고 했는데

아마 무의식 적으로 던지고 놀았겠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그건 차별이었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거예요        

       - 초등학교 동창 INT


게이오 대학 진학 후 우연히 후배의 권유로 썼던 희곡 한 편으로 연극 세계에 입문한 츠카 코헤이. 1970년대 <아타미 살인사건> <비룡전> <스트리퍼 이야기> 등 잇달아 작품을 탄생시키며 이른바 “츠카 시대”의 서막을 여는 츠카 코헤이!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다른 재일교포 작가들과 달리 좀처럼 재일교포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재일교포로써 느끼는 설움이나 억압을 작품으로 썼으면 훨씬 책도 많이 팔고

여러 작품을 쓸 수 있었어. 하지만 그건 굉장히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항상 말씀 하셨어요 그래서 자신은 항상 정면 돌파를 한다고...

        - 영화 비룡전 제작자 김형준 INT

# 츠카 코헤이 뒤늦게 조국을 발견하다.

1985년, 처음으로 조국을 방문한 츠카 코헤이. 당시 그는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일본인과 재혼해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둔 상태였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 뒤늦게 만나는 조국은 그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을까?
 

아빠는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단다. 도대체 어떤 곳에서 태어났는지, 그 근본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우리들은 일본에서는 셋방 든 사람과 같아서 “나라”라는 것을 그다지 느낄 수가 없잖아. 

        - (저서) 딸에게 들려주는 조국


# <아타미 살인사건> <뜨거운 바다>로 재탄생 되다!

전무송 강태기 최주봉 김지숙과 함께 한 그의 첫 모국 공연 <뜨거운 바다>

이 공연은 1985년, 한국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엄청났어요 획기적이다! 때론 뭐 만화 같다!

아마 공연할 때 대한민국 연출자가 안 본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하도 궁금해서...

일본에서 온 연출자가 누구냐 이거야   

      - 연극배우 최주봉 INT


그의 첫 모국 공연은 <아타미 살인사건>을 <뜨거운 바다>로 재탄생한 작품이었다. 한국 배우들과 함께 연습하며 그는 한국 문화를 배워갔고 그의 생각은 곧 대사로 바뀌다. <뜨거운 바다>는 그가 뒤늦게 발견한 조국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간 츠카 코헤이는 자신의 재일 경험을 바탕으로 제2의 연극 인생을 시작한다. 이때 발표된 작품이 바로 재일교포로써 겪어왔던 갈등과 고민을  솔직히 털어 놓은 에세이 <딸에게 들려주는 조국>이다.


#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었던 츠카 코헤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에선 본격적인 일본문화개방정책이 펼쳐진다. 1999년, 양국 문화 교류의 선봉이라는 임무를 띠고 또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츠카 코헤이. 당시 일본에선 총리였던 오부치까지 격려 방문을 할 만큼 일본의 관심은 대단했다.


제 자신이 재일한국인이기 때문에 가끔 나는 왜 일본에서 태어났나? 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한테 이 일을 하게 만들려고 일본에서 나를 낳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게 됐어요   

        - 1999년 방한 당시 츠카 코헤이 기자회견 


드디어 준비기간만 1년이 걸린 ‘츠카 3부작’이 공연됐다. ‘츠카 3부작’은 그의 대표작 <아타미 살인사건>을 3가지 버전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1985년도의 영광을 담은 <뜨거운 바다>와 젊은 한국 배우들로 구성된 <평양에서 온 형사> 그리고 일본 배우들로 구성된 <매춘 수사관>이었다. 그는 심혈을 기울여 조국 문제와 재일 교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평양에서 온 형사>에선 분단 문제를 다루었고 <매춘 수사관>에선 재일교포 문제를 녹여냈는데,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작품마다 캐릭터가 엇박자로 얽혀있다”

“조국의 분단 현실을 조명해 보겠다고 밝힌 기획의도가 무색할 정도”

“무대는 통일에 대한 진지한 담론보다 3류 쇼 무대에 근접해 있다”

    - 1999년 당시 츠카 공연에 대한 한국 기사들


실망한 츠카 코헤이는 다신 한국을 찾지 않겠다 말을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 마지막 유언, 결국 이루지 못한 꿈

2010년 1월 폐암 사실을 언론에 공표한 츠카 코헤이. 그전까지 그의 병환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세가 악화 된 와중에도, 병실에서 전화 연출을 계속 했던 츠카 코헤이. 그는 뜨거운 열정으로 한국에서의 공연 역시 계획 중에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츠카 코헤이는 2010년 7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돌아보면 참 부끄러움이 많은 인생이었습니다.

먼저 가는 자는 뒤에 남은 자에게 괴로움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믿고 있는 종교도 없고 죽은 자에게 지어주는 법명도, 무덤도 원하지 않습니다. 밤샘, 장례식, 송별식 등의 일체의 의식은 사양합니다.

유골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딸에게 한국과 일본 사이 쓰시마 해협 근처에 뿌려 달라고 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과분한 사랑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010년 1월 1일 츠카 코헤이


큰 상처를 받고 돌아갔지만 마지막까지 고국을 갈망했던 츠카 코헤이!

재일교포로 살아 온 그에게 조국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 제작진

기획 : 정성후

연출 : 한홍석

대본 : 김정은

조연출 : 백샛마

취재 : 정혜림

홍보 : 한임경

예약일시 2011-03-15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