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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장경훈, 어머니 영전에 금메달 바치는 날 (가제)
광저우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총 15일 간의 짧은 여정. 그중 11월 17일은 우리에게 어떤 날이었을까. 그날은 수영선수 박태환이 세 번째 금메달을 딴 날이고, 대한민국 대표팀이 총 7개의 금메달을 추가한 날이며, 5명의 한국 선수가 안타깝게 결승에서 패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하는 어느 무명 선수가 자신의 모든 운명을 걸고 시합을 치룬 날이기도 했다. 바로 태권도 -74kg급 국가대표 장경훈(26)이다.
장경훈에게는 세 명의 가족이 있다. 17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 장충권(53)씨와 미용사의 꿈을 가진 여동생 장유나(24), 그리고 두 달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 서정순(52)씨. 경훈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전에 반드시 금메달을 바치리라 다짐했었다.
혼신을 다해 운동하는 선수, 최고보다는 최선을
스물여섯 살인 장경훈은 태권도 대표팀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대부분 선수들이 20대 초반인데다 막내인 이대훈(19)은 아직 고등학생. 경훈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나이도 경험도 아닌 남다른 성실함이었기에, 감독은 대표팀이 결성되자마자 그를 팀의 주장으로 발탁했다.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그가 ‘혼신을 다해 운동하는 선수’라고 입을 모은다.
“경훈이는 운동을 할 때 정말 혼을 다해서 해요. 그리고 워낙 성심이 되어있고 예의와 기본적으로 갖춰야 될 인성이 딱 갖춰져 있는 선수, 그리고 정말 노력하는 선수입니다” (전문희, 대표팀 코치)
“바른 사나이, 단정하고 거의 FM같은 친구에요. ... 타고난 기량보다는 꾸준히 열심히 해서 기량이 상승되어 오는 그런 선수에요” (류병관, 대표팀 총감독)
경훈이는 항상 남들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면서도 끝까지 웃음과 활기를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선수다. 어린 후배들이 강도높은 훈련에 지쳐 쓰러지는 순간에도 밝은 얼굴로 파이팅을 외치고, 다른 선수들이 모두 휴식하는 야간에도 경훈은 혼자서 어두운 훈련장을 땀으로 채우고는 했다.
“어머니께서 항상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라고 하셨거든요. 노력은 결코 배신을 안 한다고 항상 어머니가 그 말을 저한테 자주 해주셨어요. 저한테는 한 길로만 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어요. 엄마의 그 말이” (장경훈)
스물여섯에 이뤄낸 국가대표의 꿈,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태권도계에서는 노장이라 불리는 스물여섯에 경훈은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다섯 살에 태권도를 시작했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과 아버지 역할의 부재 때문에 그의 선수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엄마는 경훈의 유일한 응원자이자 후원자였다. 아들의 크고 작은 시합이 있을 때마다 전국을 따라다니며 관중석을 지켰던 엄마. 경기 직전 엄마의 얼굴을 보면 긴장되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지고는 했다. 20년 가까이 빛을 보지 못하던 경훈이가 지난 4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따내던 날, 엄마와 아들은 서로 전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없을 만큼 진짜 모든 걸 다 이뤄낸 기분이죠. 너무 좋았어요. 이 소식을 그냥 빨리 어머니랑 통화 해야겠다 이런 생각 밖에 없었어요” (장경훈)
“엄마랑 버스타고 가는 길인데 갑자기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국가대표 됐다고. 엄마 뭐야, 그랬더니 오빠 국가대표 됐다고 막 우시는 거에요. ... 엄마가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자랑스럽다고 그랬어요. 그때 느낌은... 말로 표현 못하죠” (장유나)
평생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 아직 다 보여드리지 못했는데...
엄마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뇌졸중 발병 당시 전신마비였던 아빠를 17년에 걸친 간호 끝에 편마비로 호전시켰고, 25년 동안 산동네 허름한 집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모은 돈으로 작년에는 아파트까지 장만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들의 선수생활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고, 결국 국가대표가 되도록 이끈 장본인 역시 엄마 서정순씨였다. 경훈이가 태릉선수촌에 입소한 후 엄마는 멀리 있는 아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기 위해 컴퓨터학원에 다녔고, 광저우로 날아가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생전 처음 여권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 9월 19일, 필리핀 전지훈련을 다녀온 경훈이가 추석 휴가를 나오던 그날. 엄마는 충청도의 어느 산을 오르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말았다.
“....그때 저는 서울에 있었는데..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다른 사람이 받는 거에요. 119 구조대원이라고.... 엄마 좀 바꿔 달라고 그러니까 엄마 지금 전화 못 받는다고.....” (장경훈)
“오빠가 와서 그냥 저를 껴안았어요. 껴안았는데 오빠가 몸을 계속 달달달 떠는 거에요. ... 놓으라고 하니까 막 몸만 떨고 저를 안 놔주는 거에요..” (장유나)
누구보다 엄마를 의지하던 가족들에게 그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믿을 수 없는 일. 엄마의 죽음 후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아빠는 한동안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아내를 찾았고, 유나는 아빠의 병수발을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어야 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경훈은 마음껏 울 수 없었다. 여동생과 아버지를 지탱해야 했고,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야했기 때문이다.
“오빠가 저한테 그랬어요 울지 말라고. 말로 해봤자 안되겠지만 울지 마. 울면 안 돼. 똑바로 봐 오빠 똑바로 봐. 오빠를 봤어요. 이젠 아빠랑 너랑 나랑이야. 잘 할 수 있겠지? ...잘하겠다고는 했죠. 근데 잘할 수 없는건 사실이잖아요. 엄마의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장유나)
“동생이 너무 많이 우는 거에요. 근데 제가 똑같이 그렇게 해버리면 동생이 더 힘들어할 것 같고 그래서 저라도 좀 잘 참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머니 영전에 약속했죠. 반드시 금메달 바치겠다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장경훈)
그가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하는 또 다른 이유
경훈에게는 엄마와의 약속 외에도 이번 시합에서의 우승이 절실한 이유가 있다. 아픈 아빠를 위해 여동생이 직장까지 그만둔 지금집안의 유일한 소득은 경훈의 소속 실업팀 급여.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군 면제의 혜택을 받아 계속 선수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더 이상 군 입대를 미루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아빠를 집에 두고 유나가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경훈에게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 아빠와 유나는 아직 경훈이가 집에 없는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놓칠 수 없는 금메달, 그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벽
누구보다 금메달이 절실한 경훈이지만, 사실 그의 우승 앞에는 수많은 난관들이 버티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라저스트(lajust) 전자호구. 발차기의 빠르기와 강도에 승부가 좌우되던 기존 방식과는 달리 전자호구를 사용할 경우 발과 몸통의 센서가 정확히, 일정한 면적 이상 접촉되어야만 득점이 된다. 빠른 연속발차기가 특기인 경훈에게는 결코 유리한 방식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 한국 태권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이란(Iran)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전자호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경훈이 속한 체급의 벽이다.
“공교롭게도 경훈이 체급(-74kg급)이 제일 (선수들이) 센 체급이에요. 체격으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저 체급의 선수들이 가장 빠르고 파워있고, 외국도 마찬가지거든요. ... 또 역대 우리 선수들이 제일 저 체급에 취약했어요” (류병관, 대표팀 총감독)
운명을 결정지을 최고의 순간, 맞이할 수 있을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의 굳은 약속이자, 자신과 남은 가족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인 기회다. 군 제대 후 스물여덟이 되는 경훈에게 또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기회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그만큼 경훈이는 절박하고, 그만큼 치열하게 준비하고 노력해왔다.
2010년 11월 17일, 지난 20년 동안 경훈이가 쌓아온 모든 노력과 눈물이 단 하루 만에 승부를 보게 될 그날! 늘 경기장 한구석을 지켰던 엄마를 대신해, 이번에는 여동생 유나가 관중석에서 오빠를 응원하기로 했다. 몸이 불편한 아빠는 집에서 하루 종일 가슴 졸이며 경훈의 소식을 기다릴 것이다. 그날 경훈이는, 그리고 유나와 아빠는 과연 어떤 얼굴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될까...
“저한테는 진짜 내일이 최고의 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기대돼요. 내일 이맘 때 시간이면 시합 끝나고 마음껏 웃고 싶어요. 마음껏 울고 웃고.. .... 그동안 울고 싶었던 것 참았던 것 진짜 내일 일등하고 펑펑 울 거예요” (장경훈, 경기 전날 인터뷰)
연 출 : 유해진 구 성 : 김은희 문 의 ; 홍보국 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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