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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회 - <연평도의 그날>
11월 23일 오후,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던 연평도에 북한의 기습적인 해안포 포격이 시작되었다. 바닷가에서 굴을 따고 있던 할머니도, 방에서 텔레비전으로 아시안 게임 중계를 보고 있던 아저씨도, 꽃게철을 맞아 꽃게잡이에 나섰던 선원들도, 말년 휴가를 나서던 해병대 장병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해병대 연평도 부대원 2명의 사망 소식에 이어 다음날에는 해병대 막사 공사를 위해 연평도에 있던 인부 2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고, 전화도 전기도 끊긴 섬에서 대피소에 흩어져 숨어있던 주민들은 속속 연평도를 떠나 인천 연안 부두로 모여들었다. 북한의 연평도 피격 사건이 발생한 그 생생한 현장상황, 그 속의 사람들을 <시추에이션 휴먼다큐 ‘그날’>이 가장 먼저 다큐멘터리로 전한다.
<그날, 인천 연안 부두의 사람들>
연평도 피격 사실이 전해지자 인천 연안 부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떠나는 여객선을 간신히 붙잡아 타고 섬을 떠난 사람들, 취재진들, 구호물품을 나르는 사람들, 군청 직원, 해양 경찰... 남편이 연평도 안의 군부대 공사장에 인부로 들어간 지 일 년째라는 이옥섭 씨, 나이 드신 아버지 혼자 연평도에서 소일거리 하며 살고 계시다는 노세환 씨, 연평도에서 배로 탈출 중이라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딸 김미경 씨 부부 등 연평도에 가족을 둔 사람들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다음 배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어선을 타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피격이 시작된 후 한 어선의 선장과 선원들은 총 여덟 명이 다 함께 긴급히 섬을 빠져나왔다. 한국에 온 지 다섯 달 밖에 안 됐다는 파키스탄인 선원 누루 씨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숙소를 찾아 인천 곳곳의 모텔을 다녀보지만 섬을 빠져나온 주민들이 많아 방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물 정리를 하다 말고 포탄 공격을 받은 집으로 들어가 잡히는 대로 짐을 싸서 나왔다는 김철진(25세) 씨는 탈북자다. 가방에서는 유리 파편들이 쏟아져 나온다. 12월까지 꽃게철인데 이제 조업도 다 틀렸고, 냉동 창고고 뭐고 다 그냥 두고 나왔다는 선장은 언제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 속이 탄다.
<그날, 아들을 잃은 사람들>
연평도 부대에 아들을 보낸 모든 부모들은 온종일 마음을 졸였다.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이 발표된 순간, 이들은 내 아들은 무사하다는 안도의 한숨도 함부로 내쉴 수 없었다. 군생활을 거의 다 마치고 말년 휴가만을 앞두고 있던 서정우 병장은 휴가를 나가던 당일, 포탄을 맞고 사망했다. 입대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던 문광욱 이병은 포탄의 파편이 심장에 박혀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에 가족들은 군에서 보낸 차를 타고 시신이 이송되었다는 국군수도병원을 향해 오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국군수도병원에 분향소가 마련되고, 유가족에게 사망 경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갑작스레 아들을 잃은 가족은 그저 황망하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날 이후, 연평도는 지금>
피격 이후 공개된 연평도의 상황은 처참했다. 두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공사 현장에서는 차와 컨네이너 박스가 구겨져 뒹굴고 있었고, 가게가 즐비한 거리의 유리창은 모두 깨져있었다. 폭격을 바로 맞은 집은 전소되어 흔적도 알 수 없었다. 복구의 손길이 조금씩 미치고 있지만 복구된다 해도 여기에서 계속해서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피격 이후 민간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던 연평도. 이틀 뒤인 25일, 마침내 연평도로 들어가는 뱃길이 다시 열렸다. 인천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던 연평도 주민들이 다시 연평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 피격을 맞은 집으로 짐을 꾸리러 돌아가는 주민들과 함께 연평도에 간 <그날>팀. 그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담았다.
기획 : 허태정 CP 연출 : 최병륜 PD / 조준묵 PD / 김현철 PD / 이경용 PD 홍보 : 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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