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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의 창] 아프리카 최대 목화 생산국, 말리 코튼로드의 위기
인류에게 가장 오래 된 작물 중 하나이면서 면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목화. 말리는 해마다 100톤이 넘는 목화를 생산해온 아프리카 최대 생산지다. 말리 사람들에겐 오래전부터 풍요의 상징이자 ‘백색금’이라고 불린 목화. 그런데 최근 말리에서는 목화재배를 포기하고 떠나는 농민들이 늘고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목화산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끝을 모르는 목화 시세의 폭락, 빚더미에 허덕이는 농민들
순백색의 목화들로 수확이 한창인 말리로 W 제작진이 찾아갔다. 수도 바마코 근처의 농촌마을에서는 흥겨운 노동요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목화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는 수단이죠.”(농민) 말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목화 수확에 즐거워야 할 그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예전엔 이 방은 솜으로 가득 찼어요, 하지만 작년에 소 열 마리를 모두 팔아버려서 혼자 손으로 작업하고 있어요.”(농민) 목화 값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일 킬로그램에 3달러였지만 2007년 기준으로 가격은 0.39달러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그에 비해 목화 재배를 위해 필요한 비료 가격은 80퍼센트 이상 올랐다. 2005년 이후 말리 목화 농민 3분의 1 이상이 농사를 포기했다.
목화의 이면에 숨겨진 세계화의 그늘
말리 목화산업이 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세계화였다. 전 세계 목화 수출액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미국은 목화가격의 100퍼센트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싼 미국산 목화가 시장에 쏟아지자, 전 세계 목화 값은 폭락해버린 것이다. 결국 최빈국들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인도의 경우, 시장개방 이후 부채로 인해 자살한 농민만 18만 명! 또한 30만 명의 목화 재배 농민 중 9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빚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주는 일자리를 잃어버린 채 고통 받고 있는 말리 목화재배 농민들의 비참한 삶과 현실을 W에서 집중 취재한다.
[W-PEOPLE] 배고픈 이들을 위한 하모니! 콩고 판 베토벤 바이러스, ‘킴방기스트 관현악단’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 거리에 '베토벤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다! 80년 간 벨기에의 식민지로, 1960년대 이후 분쟁과 내전의 상처로 얼룩진 땅 콩고에서 킴방기스트 225명의 단원들이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거리로, 시장으로, 장소를 불문하고 직접 찾아가 클래식을 들려준다. 이들이 전해주는 진한 감동의 이야기를 W에서 만나본다.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하모니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에서 활동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 W제작진이 찾아갔다. 기존에 있던 악기를 뜯어 이를 본떠서 악기를 만들어야 될 정도로 단원들의 형편은 어려웠지만 음악에 대한 열의로 가득했다. 각자 바이올린, 비올라, 클라리넷 등 자신이 맡은 악기를 들고 연습하는 단원들. "전 음악과 함께 자랐어요. 음악은 제 열정입니다."(단원) 바게트 빵을 팔아 하루를 살아가는 첼로 연주자, 하루 종일 힘들게 풀을 베어 생활하는 클라리넷 연주자, 오락실을 운영한 돈으로 음악활동을 이어나가는 트럼펫 연주자까지. 이들은 대부분 배고프고 가난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느 오케스트라 단원들 못지않았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행복해져요."(시민) 이런 그들이 만들어내는 선율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사람들이 클래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교회에서도 클래식을 하고 있으니까요."(단원) 이를 반영하듯 킴방기스트 관현악단에 지원하려는 사람들로 사무실 앞은 가득했다. "지원자가 부자건, 가난뱅이건 차별 없이 음악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단원이 될 수 있어요."(루베이타 비서)
클래식 음악이 가진 힘 -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다
내전과 분쟁의 상처로 얼룩진 콩고에서 클래식 연주가 가장 행복하다는 킴방기스트 225명의 단원들.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학교를 다녔죠. 전쟁으로 집은 엉망이었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부씬도 단원) 팡파르 악단에서 트럼펫을 다뤘던 부씬도의 아버지는 전쟁 중 반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이 후 부씬도는 킴방기스트를 들어와 클라리넷을 불게 되었던 것. "클라리넷을 불 때면 아버지가 생각나요."(부씬도) 전문적으로 악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단원들, 그러나 그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악기를 들었다. "음악과 클래식을 사랑하는 걸 따라올 사람이 없죠. 가난도 열정을 막을 순 없어요."(단원)
잦은 분쟁과 내전으로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는 콩고 민주화공화국, 수도 킨샤사에 울려 퍼지는 감동의 하모니!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225명의 단원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클래식의 향연을 W에서 만나본다.
[W-ISSUE] 시한폭탄이 되어 돌아온 참전군인들, PTSD
지난 9월, 미국은 7년 5개월간 끌어오던 이라크 전쟁의 종결을 선언했다. 그런데, 미국에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났다. 거리 한복판에서 미군사상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 것에 이어, 아프간에서 복무하던 군인들이 스포츠처럼 민간인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 이외에도 이라크 전 참전 군인들에 의한 범죄로 미국사회는 긴장했다. PTSD로 인해 시한폭탄이 돼버린 참전 군인들을 통해 전쟁이 가져온 끔찍한 후유증을 고발한다.
일상이 전쟁이 된 사람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취재진은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두 군인을 만났다. “무고한 사람들. 여자와 아이를 죽이고 그들의 인권을 해치게 된 게 화가 났어요.”(2003년 참전, 매튜) “밖에 있는 것처럼 밤에도 창을 열어놔요. 춥게 느껴져야 잘 수 있어요.”(이라크 전 운전병 복무 여군) 전장에 선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아니었다. 조국을 위해 싸운 그들이 얻게 된 건 바로 PTSD! PTSD란 전쟁, 고문 등 심각한 사건을 겪어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정신질환!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드는 고통, PTSD
2009년, 텍사스주 포트후드 기지에서 미군사상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다. 43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사건의 범인은 하산 소령. 놀라운 사실은, 그가 참전 장병의 PTSD를 치료하던 의사라는 것!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군인들과의 상담이 참전도 하지 않은 그를 PTSD로 내몰았다. 이처럼 PTSD는 개인질환이 아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참전군 셋 중 한 명꼴로 PTSD를 겪으며 이로 인한 자살률은 역대 최고치”란 미국 병무청의 발표. “이라크 전 후 군 관련 사람들의 체포가 300%넘게 증가했고, 참전군이 미국으로 온 뒤 범죄 또한 늘었다.” 참전군들은 수 년 간 PTSD로 고통 받았지만 이를 위한 제도는 없었고 때문에 법정 소송을 불사하는 이도 있었다.
미국은 지난 7월에야, PTSD 보상과 치료를 위해 VA제도(퇴역군인 보상제도)를 개편했다. 하지만 보상 받으려면 폭력과 테러를 겪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까다로운 법적절차는 군인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하루 종일 설문과 테스트를 한 끝에 서류를 접수했죠.” 치료와 보상도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받을 수 있는 것. 때문에 참전군들의 반발 또한 적지 않다. “퇴역군인의 이혼율, 자살률을 보면 이 전쟁이 사람과 사회도 파괴함을 알 수 있죠.” 전쟁터에서의 공포를 안은 채 일상으로 돌아온 군인들은 전쟁보다 더 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홍 보 : 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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