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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생이슈 - 민간인 사찰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
연출 : 서정문 PD
지난 29일, PD수첩은 국무총리실(이하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방송했다. 방송 이후,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국민과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리실은 내부에서 철저한 조사를 거쳐 직권남용 등의 위법 사실이 밝혀지면 검찰 이첩 등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 의혹 제기 이후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는 총리실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간인 사찰 의혹! 국무총리실의 반쪽짜리 조사? 2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과 관련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총리실의 태도가 석연치 않다. 사건의 피해자인 김종익씨는 총리실의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조사는 오직 이인규 지원관과 부하 직원 2명에 대해서만 이루어졌다.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에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총리실의 반쪽짜리 조사의 결과에 의혹이 제기 된다.
피해자 김종익 씨 ‘이광재 당선자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다’는 근거는? 방송 이후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는 2차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 김씨가 한 때 이광재 당선자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다는 내용 등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PD수첩의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총리실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이는 총리실이 사실에 대한 확인 없이 언론을 통해 사실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는 더욱 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총리실은 이 기사에서 말하는 ‘총리실의 관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며 ‘사실 확인 중’이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PD수첩은 브리핑 직후 총리실 대변인을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에서 총리실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이미 ‘선’을 그어놓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총리실 대변인은 “(이인규 지원관을 포함한) 세 명 정도가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한 총리실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는 ‘전임 총리 시절의 문제’로 답하여 진상 규명의 의지가 있는지 의혹만 키우고 있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의 진상은 과연 밝혀질까? PD수첩이 민간인 사찰 의혹 제기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취재했다.
<심층취재> 축복동 살인사건, 내가 정말 사람을 죽였나요?
연 출 : 강지웅 PD
술에 취해 친구를 죽였다. 목격자도 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모든 것이 누명이라고 주장한다. 진범은 따로 있다는 것. [PD수첩]에서 2007년 8월 5일 일어난 목포 축복동 살인사건의 재구성을 통해 이 사건의 조작?은폐의혹을 취재했다.
▲ 내가 정말 사람을 죽였나요?
2007년 8월 5일 직장동료 사이인 정씨와 유씨는 술을 마시고 길을 가다 A양과 그녀의 남자친구 B와 시비가 붙는다. 그 와중에 유씨가 사망한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동료인 정씨. 그가 동료 유씨를 상대편으로 ‘오인’하고 돌려차기로 머리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유력한 증거로 나온 것은 싸움을 했던 상대방인 A와B의 증언 그리고 싸움을 말리러 나왔다고 하는 C씨의 증언이었다. 만취상태라 기억이 전혀 없었던 정씨는 경찰의 추궁에 죄를 인정한다. 결국 그는 2008년 1월 상해치사혐의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사건 이후부터 사건현장 주변 동네에서 억울한 사람이 범인이 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게다가 사건을 처음부터 본 목격자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 축복동 살인사건, 그 날 무슨 일이? 범죄의 재구성
상식적으로 친구를, 그것도 만취상태에서, 돌려차기로 쓰러뜨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납득 가능한가? 정씨는 구치소에서 억울한 심정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았다. 가족들은 사립탐정 원린수 씨의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 그 역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경험으로 사립탐정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정씨 가족의 사연을 듣고 목포 사건현장에 내려갔다. 처음 원소장이 사건현장을 방문했을 때, 동네주민들은 모두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그는 17일 동안 50명이 넘는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극적으로 목격자 6명을 찾아냈다. 그 중엔 사건을 처음부터 1시간 넘게 보았다는 이도 있었다. 새로운 목격자들의 증언은 A,B,C 세 명의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첫째, 유씨를 발로 찬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 둘째, 싸움이 일어난 시각이 세 명이 말한 새벽 4시경이 아닌 새벽 2시경이라는 것.. 더구나 세 명의 목격자 A,B,C의 증언끼리도 서로 엇갈렸다. 특히 정씨가 유씨를 돌려차기하는 모습에 대한 A와 C의 증언은 정반대였다. 정씨의 자백엔 경찰의 유도심문 의혹이 제기됐다. 사건 초동수사단계에서 여러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됐다. 제작진은 이를 묻기 위해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과 검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사건에 관해 언급을 회피했다. 수소문 끝에 만난 A,B씨 역시 모든 혐의를 부인할 뿐인데...
▲ 진범은 어디에? 정씨는 2008년 1심에 대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새로운 목격자들의 증언이 받아들여져 이 후 정씨는 무죄판결을 받고 2009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원소장은 검찰에 A,B,C를 상해치사와 위증혐의로 고발한다. 죽은 유씨 유가족 측 또한 재조사를 요청했다. 대법 무죄확정 후 9개월여, 재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PD수첩]에서 축복동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혀본다.
*사진은 심층 취재 사진으로 첨부합니다.
기획 김태현 홍보 남궁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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